-당신의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지 마세요-
하루는 옆에 있는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를 상담하다 보니 친오빠가 지속적으로 때린다는 제보전화였다.
결론은 그 오빠를 불러서 동생을 때리지 말라고 잘 지도해달라는 요지였다.
나는 그냥 남매지간에 흔하게 싸울 수는 있지만 동생을 지속적으로 때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담임선생님은 “그럴 애가 아닌데 너무 착해서 맞고 다닐 것 같은데요...”라며
이름을 잘못 안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일단 아이를 불러서 만나보기로 했다.
한눈에도 야리야리하고 폭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 요즘 마음적으로 힘든 일 있니?”
“아니요”
“ 동생이 말을 잘 안 들어서 속상하니?”
동생 이야기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차마 말 못 할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괜찮아 선생님은 너를 도와주려는 거야. 힘든 일 있으면 말해주지 않을래?”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아빠는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대기업의 과장님이시다.
먹고사는 걱정은 없지만 아빠가 엄마를 맨몸으로 쫓아내셨단다.
이혼하면 위자료를 줘야 한다며 이혼조차 안 해주고 있단다.
쫓겨나서 갈 곳 없는 엄마는 할 수 없이 고향인 제주도에 계시다고 했다.
포항에서 근무하는 아빠는 2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고 대부분 동생과 둘만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생활은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2주일간 쓸 생활비는 넉넉히 주신다고 했다.
(학교에서 점심, 저녁 급식을 다 먹고 있고
중학생인 여동생은 저녁에는 혼자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어서 생활에 불편은 없단다)
문제는 중학생이 된 여동생이 처음으로 맞게 된 생리를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교복에 묻히고 다닌 것이 화근이었다.
철없는 중학교 아이들에게 전교생 놀림감이 되었고
그 이야기는 같은 중학교에 동생이 함께 다니고 있는 반 친구를 통해
고등학교까지 소문이 나게 된 것이었다.
아이는 창피하고 속상한 마음에 그날 동생을 많이 때렸다고 했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을 텐데 그 어린것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웠을까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2주 만에 아빠가 오는 날이 반갑지 만은 않았단다.
집에 오자마자 집 꼬락서니는 이게 뭐냐고 트집을 잡는 통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매일 10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잘하다가도
금요일만큼은 청소를 해야 한다며
자율학습을 빠지기가 일쑤였다.
또한 아빠는 자신의 결혼생활의 파탄의 원인을 모두 엄마에게 돌리고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는 정서적 학대를 서슴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는 이혼을 요구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난 후 화가 난 아빠가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향해 식칼을 던진 적도 있다는 믿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빗맞고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화가 나면 자신에게
“나가 뒈져 이 새끼야 그리고 뒈질 거면 꼭 차에 치어서 뒈져라 아빠가 보험금이라도 타 먹게”
이런 막말을 퍼부었다며 구슬프게 울었다.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에서 보는 아이들은 모두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가정에서 부모의 격려와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자란 아이와
이렇게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며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차이가 있다.
문제학생의 부모를 상담하다 보면 오히려 아이가 불쌍해 보이고 더 잘해주고 싶을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자신도 화 풀 곳이 없으니 동생을 자주 때리게 된 것 같아 안쓰러웠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아빠는 너한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 같아
힘들겠지만 한 귀로 흘려듣고 아빠가 또 혼자 화가 나셨구나 생각하고 가슴에 담아두지 마
그런 아빠를 네게 허락하신 이유는 그런 역경 속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다시는 너에게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빠와 상담은 해야겠어 괜찮겠니? "
"가정 문제가 드러나게 돼서 아빠가 불편한 마음이시긴 하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또 달라지실 수도 있지 않겠니?"
아이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론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때 일이 터졌고 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고도 했다.
나는 내 전화번호를 주면서 혹시라도 지난번 같은 응급상황이 발생되면 언제든지 전화를 하라고 당부했다.
며칠 후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한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작은 키에 선한 얼굴에서 아이를 학대하던 아빠라는 인상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아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일로도 힘든데 멀리 떨어져서 아이들을 혼자 케어하기 위해 애쓰는 아빠의 힘든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런 가운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은 그래도 아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아버님은 이상한 열등감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난히 작은 키에 대한, 그리고 아내와 화목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픔이 커 보였다.
나는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아버님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보기를 권해드렸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퍼붓지 말고 아버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드렸다.
그리고 아빠는 당시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뱉어 냈겠지만 아이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몹쓸 말들에 대해서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만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끝으로 학교에서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한 번만 더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정서적 학대나 언어폭력 등이 생긴다면 경찰서에 신고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아버님은 처음 상담할 때보다 훨씬 밝은 표정이 되었고 다시는 아이들에게 화풀이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한다면 대부분 가족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도 가족일 수 있다.
그만큼 나에게서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것을 다 이해하고 용서할수 없으며 한쪽이 지나치게 기대면
나머지 한쪽도 힘에 부쳐 함께 넘어지기 십상이다.
사랑하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각자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진정 소중한 가족이 될수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