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책의 무게

물리적 무게와 마음의 무게

by 글마루

오늘 책 정리를 했다. '정리'라면 있는 책을 줄이거나 없애는 의미도 될 수 있고, 어질러진 책을 갈래별로 깔끔하게 분류하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내가 한 정리는 후자에 해당한다. 내 내면에는 그 '정리'가 주는 의미가 단순히 피상적이 아닌 마음의 정리와도 연결되기에 차일피일 미뤄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정리'가 단정하고 말끔한 것 같아도 '정리'는 다른 의미로 단절도 뜻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보물을 찾아다니듯 책의 우주에서 살았었다. 어릴 때 책이 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한 권도 없을 때의 목마름을 해소하듯 오직 책만이 내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었고 번 돈으로 공부하고 책 사는 데 쓸 정도로 책 사랑에 빠졌었다. 그 목마름은 쉽게 그치지 않아 책만 보면 소유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사고 나면 내 재산을 수억 원 축적한 것 같은 충만감에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았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책에 대한 내 갈망은 마르지 않았다.


교사인 올케의 집에도 어엿한 책장에는 전집이 통째로 위풍당당했고, 줌 수업을 하기 위해 모니터에 비친 교사나 교수님의 뒤로는 온통 한 벽을 책들이 들어차 있었기에 나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적인 효과로 인해 '사람의 가치는 곧 책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여겨졌다. 나도 그들이 탑승한 지식인과 우아함이라는 열차에 탑승하고 싶었고 흉내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속을 채우지 못하니 겉이라도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은 내 우매함의 발로였을까.


도서관에 가면 수없는 장서를 보며 흐뭇함을 넘어 흥분이 되었고 가진 게 너무 많아 뭘 골라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책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느라 정작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드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 선택하느라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책을 펼치고 목차를 훑고 대충대충 책갈피를 넘기며 책의 정보를 입수했기에 그 역시 순전히 손해만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정보를 먼저 알고 독서하느냐 우직하고 묵묵하게 독서하느냐는 것 역시 선택인 것이다.


사람이 간사해서인지 몰라도 읽을 책이 하나도 없을 때는 글자만 있으면 메모든, 잡지든, 신문이든 어떻게든 읽으려고만 했었다. 그야말로 종이가 찢어질 듯 시선과 마음을 집중하여 읽어가는 시간이었고 읽은 내용은 모두 내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글의 이야기가 신비롭고 새로웠기에 몰입 독서가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도서관만 가면 산처럼 높고 들처럼 넓은 책이 미로처럼 쌓여있기에 그 풍요로움이 주는 선택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 또 하나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면 바로 휴대폰이다. 특별히 연락 올 것이 없는데도 불안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시시때때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긴 점이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핑계일 수도 있는데 몰입해서 독서하지 않는 내 습관을 탓해야 한다.


도서관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무궁무진 풍족한데도 대출된 상태라든지 찾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또 대출시간에 반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핑겟거리를 대며 책에 대한 사치를 부렸다. 새 책 위주로 사다가 지인이 알려준 헌 책방을 방문하고는 비용이 저렴한 인터넷 헌 책방에서 쇼핑하느라 여념이 없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그리 반갑고 설렐 수 없어 보물처럼 책꽂이에 진열하고는 점점 늘어나는 내 보물을 보며 자식 보듯 흐뭇해했다. 책 사는 데 얼마 썼는지 계산하지 않았고 사람이 지식을 넓히고 교양을 쌓고 정서를 함양하는 데 책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나름의 진리도 책 쇼핑에 한몫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책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비율이 전에는 읽은 책이 훨씬 많았다면 읽지 않은 책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그렇게 많음에도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다른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게다가 미처 정리되지 않은 책들은 이제 책장에 꽂을 자리마저 부족했다. 그렇다고 정리하기는 왠지 아까웠다. 정리되지 않은 책들로 인해 책무덤에 갇힌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평생 처음 갖게 된 서재에서 편안하게 독서할 분위기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뭘 갖추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 읽어 다시 읽지 않을 책을 조금씩 정리했다. 책장을 주문하고 마음 편하게 독서할 방을 따로 만들어 낑낑거리며 책을 나르고 다시 나만의 서재를 만들어갔다. 마음의 끝자락에 남아 꼬여있던 마지막 끝순을 정리했다. 시도만 하면 하루도 걸리지 않을 그 일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 것이다. 또 하나 내 분신과도 같은 책이지만 만약 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 남을 책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게만 소중한 책이지 다른 이에게는 폐지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소유'라는 것이 마음의 욕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미 있는 책을 당장 처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용이 중복되거나 다 읽은 책은 서서히 정리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한 책장을 보니 흐뭇함이 일지만 아직도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책들에게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방치된 녀석들이 나를 원망하진 않을는지. 좋아서 들인 책들의 무게는 물리적인 무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책들이 주는 정신적인 무게가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가위가 눌릴 것 같은 무게를 덜기 위해서는 자주 책과 놀아주는 일. 사람처럼 그들에게도 자주 곁을 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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