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의지
연휴에는 아무것도 안 하기로 작심했는데 비가 와서 몸이 처지고 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격무에 시달리며 한 다짐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 가는 대로 쉬는 것.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은 자도 자도 계속 비몽사몽이었다. 잠에 취한 듯 잠이 잠을 부르고 그렇게 종일 방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 일어날 줄 몰랐다. 오늘이 휴일 3일째라는 생각이 들자 위기의식이 몰려온다. 남은 연휴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니 일어나 씻고 산책이라도 하자며 나선다.
볕은 넉넉하건만 불어오는 때 늦은 에이는 바람 때문에 모자를 쓰고 코를 막으며 걸어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길가에 서 있는, 정확히는 누운 것 같은 나무를 만났다. 바람에 쓰러져 누운 것도 아니건만 나무는 위태로울 만큼 땅을 향해 누워 있었다. 그 중심으로는 다른 가지가 용을 쓰며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었다. 나무의 기이한 모습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만 누웠다고 여긴 나무는 한쪽으로만 누운 게 아니었다. 왼쪽으로 뻗은 가지 역시 땅에 닿을 듯 낮았고 가지를 버팀목이 받쳐주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뻗은 가지의 수는 엄청났다. 수령이 꽤 되었음직 한 나무의 밑동이 잘려서 양 옆으로 가지가 뻗은 건지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흔적이 없다. 잎을 살펴보니 벚나무가 분명함에도 여느 벚나무와 달리 참나무처럼 둥치가 울퉁불퉁했다.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튼 듯한 모습에 묘한 경외감마저 들었다. 수령이 어림잡아도 백 년 이상은 족히 되었을 듯한 나무가 세월을 짐작하듯 이끼가 뒤덮이고 거친 것이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왼쪽으로 뻗은 가지까지 합하면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이 꽤 넓었다. 마치 서로 다른 나무가 각각 팔을 양 옆으로 늘어뜨리고 고개는 빳빳하게 하늘을 향하는 모양새에 그 옆을 떠날 수 없었다.
왠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나무 주변을 나는 자꾸 맴돌며 혹시 나무가 잘린 자리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옆으로 뻗어 땅에 닿을 듯한 가지만 잘렸을 뿐 나무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있었다. 순간 나무가 안쓰러웠다. 저렇게 옆으로 눕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의 환경 때문에 저렇게 힘겹게 팔을 벌린 채로 자란 것은 아닌지. 곧게 자라고 싶지 않은 나무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고난이라는 풍파를 맞고 싶은 사람이 없듯, 나무도 미끈하고 곧게 자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외부의 힘에 의해 저렇게 옆으로 누웠을지도 모르는 터.
언젠가 산에서 누운 소나무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오래도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운 나무가 어떤 사연으로 우뚝 서지 못하고 누워야만 했는지를. 비바람에 흔들렸을 수도 있고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 가지가 땅에 닿으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나무에게서 어떤 서러움을 읽었다. 한쪽 어깨가 처진 것이 그 무게를 지탱하느라 힘겨웠을 소나무가 가여워 어루만져주었던 기억.
너무나 낮게 뻗은 가지로 인해 나무를 타기도 무척 수월할 것 같아 어릴 적 둥구나무가 떠올라 나무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가 접었다. 어릴 땐 멋모르고 나무 위를 오르내렸지만 제 서 있기도 힘겨운 데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나무의 가지는 그 중력을 이겨내느라 가지가 뒤틀려있었다. 밑둥치는 생명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듯 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그 밑둥치 주변에는 가느다랗고 여린 새싹들이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무가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보이듯, 죽은 것 같아도 죽지 않았다는 걸 온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줄기가 뒤틀리고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나무에게서 내 젊음을 읽었다. 나 역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라는 부침에 이리저리 부대꼈었다. 나는 바르고 곧게 살고 싶은데 주변 환경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가장 믿고 의지했으며 세상 소중했던 작은 새는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버리고 둥지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지탱하고 있던 뿌리조차 흔들렸을 때의 위기감이 엄습했지만 버둥거리며 살아냈다. 세상에 지기 싫어서, 굴복하기 싫어서, 실패한 인생이 되기 싫어서, 스스로 가지를 자르고 오직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질곡의 시간들.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도 나는 '희망(꿈)'이라는 빛을 바라보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나무의 밑둥치와는 대조적으로 우듬지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다. 파란 잎들은 햇살에 반짝거린다. 죽은 것 같은 밑둥치 위로 수없이 많은 여린 가지들이 촘촘히 올라오는 것을 보며 생을 향한 의지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는 삶,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취하는 나무를 보며 인간의 나약함에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 오죽하면 그랬을까만 삶은 여봐란듯이 멋지고 보기 좋아야 삶이 아니라는 것. 팔이 잘리고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 버릴 것 같아도 결코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는 나무를 보며 살아내려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 아닐까 한다.
혼자 묵묵히 에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제 어깨의 무게를 견뎌내는 나무가 대견해 한참을 서 있다가 가지를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낮게 속삭였다.
"끝까지 살아 있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