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감동의 시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시작한 기간제교사 생활 4주 차였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재량휴업일까지 있다 보니 실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임시담임에 며칠 뒤면 갈 사람이니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게 무리이다 싶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운 좋게 기회를 얻었고 기간제라는 신분이지만 무사히 기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2학년이 8반까지 있어서 모든 학생의 이름을 짧은 기간에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학생들과 대화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내게 무척이나 흥미롭고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활동 중심의 수업을 지향하는 교육부의 방침이 무색하게도 학교 현장은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37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능’이라는 입시제도에 있겠으나 모두가 인식하는 문제가 금방 달라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벌써 수능 준비로 여념이 없다. 수능 기출문제를 풀고 문제 맞히기식의 수업을 하는데 정작 문학 시간에 좋아하는 시 한 편 없고 심지어 전과목 올백을 맞다시피 하는 학생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현실이 원망스럽고 어른으로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침 8시 20분에 학교에 도착해 조회를 시작으로 40분부터 1교시가 시작된다. 7교시가 끝나면 오후 4시 30분,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을 들어야 한다. 또 기숙사생은 의무적으로 10시까지 ‘야자’를 해야 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가지는 자유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수업 시간에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자는 학생은 늘 존재한다. 가까이 다가가 깨우다가 잠에 취한 학생을 보면 밉기 보다 안쓰러움이 앞선다. 수업 시간에 수필이나 시를 써보라고 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학교에 대한 인식은 ‘답답한 곳, 힘든 곳’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학교를 비유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학교는 감옥같다. 지옥같다."고 대답하는 학생들도 많다. 얼마나 힘이 들면 저런 표현을 할까. 그런 학생들에게 나는 그저 “그래, 힘들지…….”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문학에 대해 정답 맞히기식의 수업보다 실제 감상하고 수용하고 생산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삶 속에서의 문학’을 위해 여러 번 강조했다. 다행히 그런 내게 호응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여러 학생들에게 발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며 짧았지만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어떤 학생이든 책망과 꾸지람보다는 긍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나지만 특유의 솔직함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내 진심을 학생들이 알아주리라 믿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왕초보인 내가 완벽한 교사가 되기는 어려웠기에 진심은 통하리라 믿었다.
주말에 ‘스승의 날’이 지나고 월요일 조회를 마치고 1교시 자율시간에 교무실에서 교실로 들어가려는 내게 ‘서진’이라는 학생이 ‘배가 아프다, 가위와 풀을 달라’며 딴청을 거는 것이다. 잠시 후 이제 교실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칠판에서 뭔가를 적는 것 같았고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 교탁에는 케이크가 준비돼 있었다. 칠판에는 반 아이들이 각자의 마음을 담은 쪽지를 적어서 가득 채웠다. 순간 나는 놀라움과 감격에 어쩔 줄 몰랐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반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이 내 곁으로 달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스승의 날’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짧은 시간이었고 경험이 없어 서툰 내가 도움을 주면 얼마를 줬다고 아이들이 돈을 거둬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게다가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실제 나와 너무 분위기가 흡사했다. 짧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테의 특성을 잘 살려 나를 그렸는데 난 남자 같다며 툴툴거렸다. 내게 남긴 메시지는 기념으로 사진으로 찍어뒀다. 케이크보다도 내게 마음을 열어준 아이들의 심성이 어찌 그리 고운지 난 그저 감격스럽기만 했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이라는 경험을 하게 해줘 학생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거꾸로 감사의 인사를 받다니 그 감격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사실 선생도 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였다. 미숙한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도움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은 수업을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공부를 헛되이 한 것은 아니었기에 난 교재를 보지 않아도 내가 준비한 수업을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었다. 물론 학생들의 참여와 호응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햄버거를 주문했다. 아이들을 위해 쓰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좋은 경험을 하고 급여까지 덤으로 받는 것이다. 학생들로 인해 수입까지 생겼으니 학생들을 위해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다.
그 후에도 학생들은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모두 나의 도전정신을 응원하고 자신들도 힘을 얻고 동기부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가지 말라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원래 내 자리가 아니기에 나는 잠깐의 경험으로 만족해야 했다. 임기를 마치고 하루가 지났는데 떠나는 나를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잠시 맡았던 반 아이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2022년 5월 스승의 날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