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을 경험하다
나는 정교사가 아니라 기간제교사다. 기간제지만 교사가 되어서 감사하고 뿌듯했다. 임용시험에 합격하기도 어렵지만 기간제교사 구하기도 나이 많고 경력 적은 내겐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그랬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인드 컨트롤하며 다독였다. 그러다 오늘 무너졌다. 그동안 아무리 악조건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나지만 올해는 유독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새로 생긴 늘봄지원실장(기간제교사)으로 늘봄학교 행정업무도 총괄하고 정규수업도 한다. 게다가 3일은 중심학교에 2일은 각각 겸임학교로 출근한다. 늘봄학교 때문에 일자리가 생긴 건 감사한 일이지만, 늘봄학교 때문에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다. 해야 할 업무가 늘 머릿속에서 맴돌고 능력 부족한 중간 관리자 역할까지 하느라 사람에게도 치이고 상처받는다. 윗사람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윗사람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요즘이다.
한 학교에만 근무하는 게 아닌지라 관리자마다 다른 업무 관점으로 인해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뭔가 안정감 없이 중간에 붕 뜬 느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1~2월 기간제교사에 지원하면서 서류에서 탈락하고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 드는 좌절감을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건만 간사하게도 아무리 마음을 꾹꾹 주저앉혀도 자꾸만 '힘듦'이라는 단어와 감정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올라온다. 마음이 많이 쓰이게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 아이가 꼭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 같다고 생각했으나, 내 마음도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업무처리로 바쁘다 보니 수업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 집중하기도 어려울 만큼 그 순간순간만 버티고 있다. 월급쟁이인데 하루살이의 인생을 사는 듯, 하루를 겨우 마무리하고 허겁지겁 하루를 다시 맞이하고 나는 어느새 하루살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이런 속내를 구구절절 털어놓을 데도 없고, 털어놓기도 조심스럽다. 가만히 있자니 속병이 나고 말을 하자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나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은 맞는데 직장생활을 많이 하고 여러 기관에서 업무를 많이 본 경험이 있는데도 왜 이리 막막한 걸까. 결론은 내 능력 부족이라고 귀결 지어야겠지만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의 위기를 맞닥뜨렸다.
겸임학교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골프 연습장에 아이들을 인솔해 갔다. 3월부터 담당 실무사와 함께했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정보는 들었지만 선입견을 갖지 않고자 했다. 전교생이 얼마 안 되는 학교인데 절반이 보육원 아이들이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했다. 부모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부모 밑에서 불행하게 성장하는 것보다 한편 나을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삼으면서.
요즘 아이들은 뭐든 금방 싫증을 잘 낸다. 그 싫증은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이다. 워낙 많은 매체에 노출되다 보니 뭔가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고 점점 더 강도가 센 자극을 원한다. 어지간히 슬프거나 충격적이거나 감동적이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기도 하는 등 걸러지지 않은 매체들의 무분별한 공급이 빚어진 결과물은 아닌가 한다. 특히나 스마트폰이 보급되고는 어른들도 뭔가에 진득하게 집중하기보다 어떤 정보나 글도 힐끗힐끗 곁눈질로 훑어 읽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어른도 그럴진대 아직 미완성인 아이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르던 아이들이 얼마 전부터 점점 하기 싫어하더니 강사님이 지도를 하면 듣지 않고 심지어 발화는 하지 않은 채 입 모양으로 면전에서 욕설을 하니 그 모습을 바라본 강사님이 비참해서 하기 싫다고 토로했다. 지켜보는 우리도 불안 불안하고 안타깝지만 강하게 지도할 수도 없거니와 도무지 듣지 않는다. 어른들이 질서나 규칙을 위해 조언을 하면 바로 뒤이어지는 욕설을 뒤통수로 들으면서도 일일이 지도하기도 지칠 정도이니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만 연습하다가 귀가하는 것만으로도 위안 삼아야 했다.
동료 교사의 말을 빌리자면 학생들이 하도 말을 안 들어 고민하다가 보육원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인계할 기회가 생겼는데 교사보다 5배 더 심하게 대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애들이 애들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에다가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이니 반항심이 커질 것이라고 이해하려고만 했다. 비상계단이 철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매우 가파르고 위험했다. 위험하니 다니지 말라고 해도 순식간에 내려가고 주의 줘도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안전사고가 나면 교사의 책임으로 판결이 난 보도도 있고 일단 다치면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위험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버스가 서기도 전에 후다닥 뛰어서 내리고 미처 말할 사이도 없이 아이들 7명은 사라졌다.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도 좋으련만 문을 닫고 먼저 올라갔다. 매번 아이들은 우리 두 사람을 싫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부러 빨리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문을 닫았다. 우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처럼 그 상황을 마주하고는 했다. 엘리베이터를 먼저 타고 바로 연습장으로 올라가면 그나마 문제가 없을 텐데 2층에서 내려 철계단으로 오르는 걸 확인했다.
3층 연습장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안전사고에 대해 주의를 주고 앞으로 비상계단을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거라고 재차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말을 하고 돌아서자마자 아이 한 명이 욕설을 했다는데 그때마다 꼬박꼬박 지도하는 게 상황만 악화시킬 뿐인지라 주의를 준 것으로 끝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하지 않고 골프공을 바닥에 굴리기만 하든지, 창문을 열고 아래를 향해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자칫 무게중심이 기울면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창문을 확인하니 벌어지는 폭이 넓어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는지라 위험하다며 방충망을 닫고 밖으로 몸을 내밀지 말라고 했다.
밖의 연습장으로 몇 명이 나가고 잠시 후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한 아이가 알려왔다. 아이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자 나도 따라나갔고 정말로 교통사고가 나있었다. 골프 강사는 아이들은 놔둔 채 사고자를 구하러 벌써 저만치 걸어가는 게 보였다. 아이들에게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아이들은 위태로운 난간 가까이에서 환호하며 교통사고 난 모습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우린 자칫 아이들이 추락할까 봐 조마조마해 조심하라며 연신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난간 가장자리는 골프공이 밖으로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그물망만 있을 뿐 완전히 뚫려서 아무런 가로막이가 없었다. 누군가 하나만 중심을 잃어도 순식간에 추락할지도 모르는 위험성에 우리만 애가 탈뿐,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걸 잔소리로 여기는 듯했다.
비싼 사용료를 주면서 아이들은 80분 수업에서 10분도 제대로 연습하지 않고 저네들끼리 장난치기만 바빴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자꾸 연습장 내의 전등을 껐다가 켜는 장난을 했다. 내가 불 켜라고 하자 알면서도 일부러 어디 불났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또 한 아이가 그러지 않겠다고 해놓고 또다시 와서 전등을 껐다.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자며 잠시 밖으로 나오라니 "여기에서 이야기하세요!"라며 나를 노려봤다. 세 번을 불러도 응하지 않자 좀 전에도 불 끄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그러는 것은 선생님 말을 장난으로 듣는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옆에 실무원이 있어서 이 상황에 대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하자 갑자기 욕설을 내뱉기에 선생님한테 욕하는 거냐고 하자 맞다면서 내게 직접적으로 쌍욕을 했다. 아이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더 이상 지도가 의미가 없어서 그 사실을 바로 학교에 알릴 것을 실무사에게 요청한 후 마칠 시간이 다 되어 가서 우린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부장님께 그 사실을 말하니 이번이 가장 심하긴 한데 담임선생님 지도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교육활동 침해에 대해 말씀드리니 문제화시키면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갈 우려도 있고 그러면 학교의 존립 자체가 위태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 명은 특수교육 대상자라는 정보를 알려줬다. 겉보기엔 인지력이 부족해 보이지 않는데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었나 의아했지만, 한 명은 분노조절장애이고 한 명도 학습장애가 있다고 했다. 학생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교사 책임이 되면서 그것 때문에 노심초사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지켜보는 내가 쌍욕을 먹자 화보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특히나 초등학생은 일단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가면 사실 유무와 상관없이 조사를 받게 된다니 법의 양면성이 주는 폐해에 망연자실했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학대받는 아이들은 구출하지도 못한 채 학대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하는데 학대의 요소가 전혀 없는 무고한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아이들이 그걸 무기로 삼아 교사의 생활지도를 어렵게 한다. 실제로 이유도 없이 '신고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오늘도 어깨너머로 '아동학대로 신고해야겠다.'라는 말이 들리고는 어이가 없었다.
아직 현장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내가 지도력이 미숙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생을 그냥 산 게 아니기에 나름 반듯하게 살아왔고 인내력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갑자기 무력감과 우울감이 내면을 파고든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일 까만, 대화의 대부분이 욕설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때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예전에 나는 선생님 말씀을 하느님으로 알았는데, 이젠 학생들이 고객님으로 되고 교사가 서비스직으로 전락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들의 심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적 철학이나 신념이 있는 교사는 학생들의 행동에 방관자가 될 수 없다. 현실은 훌륭한 사명감이나 의지와는 반비례하게 애정이 있을수록 공격당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문득 십 년 후가 암담해진다. 그냥 두면 방관자가 되고 지도하면 가해자가 되는 현실에서 교사는 살기 위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몸으로 체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