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

들기름을 짜다

by 글마루

들깨 묵혀둔 것을 오늘은 마음먹고 짜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커튼을 손세탁하고 수건을 삶고, 옷 세탁까지 대충 청소까지 하고 나니 하루가 금방이다. 점심을 거를까 하다가 상추 겉절이를 찬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기름 담을 소줏병 씻은 것과 들깨 씻어 일은 것을 챙겨 방앗간으로 향했다.

방앗간에 도착하자 열기와 고소한 내가 먼저 맞아준다. 주인에게 기름 짜러 왔다고 인사하니 커다란 대야에 들깨를 비우라고 한다. 노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참기름 짜고 쑥떡을 하는지 방앗간이 분주하다. 참깨를 기계가 돌아가며 볶고 요란한 굉음이 방앗간의 살아있음을 대신해 준다.


잠시 후 다 볶아진 참깨는 착유기 속으로 들어가고 내가 가져간 들깨를 볶자 들기름 내가 진동한다. 고소한 참기름보다 특유의 들깨향을 풍기며 들깨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잘 볶아지고 있다. 나는 가끔 방앗간에 올 때면 시골 아낙네의 복장을 하고 간다.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가장 허름한 아낙네가 되어서. 이유는 딱히 없는데 너무 말끔한 차림으로 방앗간에 가면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을 느낄 것 같아서지만 이것도 핑계일 뿐, 나도 때로는 직장인의 옷을 벗고 펑퍼짐하고 평범한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적획한 것 같다.


방앗간은 고추를 빻거나 기름을 짜거나 떡을 하는 곳이어서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삶의 터전이다. 젊은 새댁보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자주 찾는 이곳은 음식에서 필요한 양념을 가공한다. 방앗간에서 가공한 양념으로 일 년을 나고 자식이나 가족들과도 나누기에 허름해 보이는 이곳이 어쩌면 성스러운 공간일지도 모른다. 조금 전 쑥절편을 빼고 참기름을 짠 노부부도 둘이 먹기보다 찾아오는 자식에게 먹이고 이웃들과도 나눌 것이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방앗간 앞은 환풍구를 통해 뜨거운 공기가 고소한 내와 매캐한 내와 섞여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코가 맵고 머리가 띵하지만 나 역시 들기름을 짜서 누구와 나눌까 궁리 중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 방앗간은 일단 삯이 저렴하고 시내처럼 복잡하지 않아 좋다. 간간히 차가 몇 대 지나갈 뿐 들리는 것은 기계음과 전봇대 위에서 재잘거리는 새 울음뿐이다. 기름을 짜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지 않은 건 방울방울 모여 가득 찰 고소한 들기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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