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째 불면

by 글마루

어젠 업무를 마감하는 주말이니 좀 푹 잠들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반은 수면, 반은 깨어 있는 채로 계속해서 업무와 관련한 꿈이 나타나고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나는 잠 속에서도 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긍정적인 희망은 고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안정되지 않은 시스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겹치자 수요일은 한 시간, 목요일은 세 시간, 금요일도 세 시간 자고 조금 전 거실로 나왔다.


이제 다시 잠들기는 요원하다. 눈은 따갑고 뻑뻑하지만 누워있는 게 고통인지라 노트북을 켰다. 받은 스트레스가 잠에서 괴롭히고 낮의 일이 밤까지, 새벽까지 이어지는 이 사흘이 석 달인 듯 지루하다.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침침한 눈을 겨우 뜨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내 안에 응어리져 있는 감정과 상처를 깨어 털어내야만 내가 살 것 같아서이다. 가끔 직장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의 소식으로 잠시 생각이 이끈다.


지난주에는 퇴근하자마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막걸리를 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서이다. 오전에는 수업하느라 허둥대고 수업 끝나고 점심 먹고 나면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업무를 해결해야 한다. 업무가 서툰 실무사의 일을 대신하고 점검하고 수정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도를 닦는 심정으로 마음을 내려놓는다. 교무실에 근무하니 내 개인적인 시간은 단 5분도 허락되지 않는다. 계속 공람을 검색하고 올라온 결재문서를 확인하고 고쳐주고, 직접 외부강사 채용 관련한 문서를 기안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퇴근을 하면서도 늘 머릿속에는 뭔가 빼먹은 것은 없는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그 생각만으로도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오직 일만이 내 머릿속을 휘어잡고 나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큰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년 선생님들이나 다른 선생님들하고 가끔 대화도 나누고 차도 마시는 여유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 게 가장 좋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매일 감사했었다. 올해도 그러리라 기대했으나 교사로 채용되어 '늘봄지원실장'이라는 직책의 덧이 써진 후 보람도 행복도 찾을 수 없다.


"힘들고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학기 초에 업무로 지쳐갈 때 2학기쯤에는 중학교나 어디에 공고가 나면 지원하리라고 마음먹었는데 방학을 앞둔 현재는 그마저도 주저된다. 이미 한 학기 가까이 해낸 이 일을 중도에서 포기하면 지금껏 고생한 것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 첫 번째 핑계이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 발생하는 게 두 번째 이유이고, 어차피 새로운 곳에 가면 다시 적응해야 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불편함이나 애로점은 또 있을 것이라는 게 세 번째 이유이다. 게다가 나는 젊은 나이가 아니다. 운이 좋으면 기간제교사를 몇 년 더 할지, 아니면 그마저도 못 구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안갯속을 걷고 있다.


불안함과 불편함과 힘듦 속에 가장 문제는 바로 내 정체성의 모호함이다. 신분은 교사이면서 업무는 늘봄 업무에만 올인하고 있는데 교사와 교류할 시간이 거의 없으니 교사와 사무직 사이에서 시소 타기를 하고 있다. 무게 중심은 처음부터 사무직 쪽으로 70% 이상 기울어 이젠 사무직으로 쿵하고 내려앉은 상태이다. 작년에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마음이 쫓기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아이들과 수업하면서도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늘봄 업무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짜증이 나고 전혀 행복하지 않다.


퇴근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혀 행복하지도 일에 만족하지도 못한다는 답을 듣고는 한다. 늘봄학교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착해 가는 단계인데 매뉴얼은 해마다 바뀌고 학교마다 다른 운영방식으로 인한 판단 장애에 매번 부딪힌다. '실장'이라는 직함이 있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또 이 업무를 능숙하게 해내도 '한시적 기간제'로 채용되었기에 올해 고생해서 체계를 갖춰놓으면 정교사가 '교육연구사'로 부임하기에 우리 자리는 없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고용에 대한 안정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잘해야 본전인 이 일에서 손 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중도에 그만둘 경우 돌아올 '책임감'에 대한 질타나 원망도 견뎌야 하며 그것이 또 꼬리표가 되어 내 발목을 잡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외부강사 20명, 자원봉사자, 돌봄 전담사, 늘봄실무사를 모두 관리해야 하니 사람 하나하나의 말이 어느 때는 가시처럼 날아와 내 심장에 박힌다. 관리자와 공무직 사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욕이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 마음을 내려놓고 화가 나지 않는 나를 보며 도를 닦았다고 여겼으나, 그것은 내가 살기 위해 내 감정을 눌러둔 것에 불과했다. 도를 닦은 것이 아닌 '체념', '포기'에 가까운 나를 버린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은 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주장만 관철하는 사람을 대하면서 나도 뭔가 어필을 해야 하건만 그러면 감정에 휘말릴까 봐 그냥 넘어가기만 하니 그것이 내 안에 가시로 박혀 마음에 병이 난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지원한다고 했는데 돌아오는 건 원망일 때의 허탈함. '학교'라는 울타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소양을 다 갖췄다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을 때의 실망감으로 '희망'이라는 불꽃에 물이 뿌려져 다 꺼져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고, 사람은 거기에서 거리라는 것. 모두 '돈'이라는 숫자로 드러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추상적인 목적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불안감은 늦게 교직에 뛰어들었는데 수업이 아닌 일을 주로 하고 있으니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불안감인 것 같다.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지난 10년이 짚불처럼 순식간에 타서 재만 남은 기분. 나는 그 불 꺼진 재를 바라보고 있다. 꺼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날아가버릴 듯한 불안감. 그런 속에도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며 억지로 긍정적인 감정으로 나를 뒤집고, 나 자신을 누르고 있으니 마음에 병이 생긴 것 같다.


매뉴얼에 업무분장이 분명한데도 하지 않았던 일이라며 사소한 업무 하나도 맡지 않으려 온갖 트집을 잡고 양보라고는 없는 동료를 보며 내 마음에 사람에 대한 '미움'이 싹텄다. 한 번 싹이 턴 미움이 점점 자라 나를 잠식하려고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 그 자체로 인식해야 하거늘 '왜 그럴까?'라고 의문을 품으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미우니 생각하기 싫고 보기도 싫건만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도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던진 말에 내가 상처받아서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한 사람이 뱉은 말이 모이면 수십이 되기 때문이다. 무심한 척 넘겼지만 어느새 내 안에 날아와 박힌 수많은 가시와 깨진 유리 파편들.


전임 교사와 이야기를 나눠봐도 자기도 굳이 뭔가를 바로잡을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고 한다. 노조가 있는 그들이 공격해 올 두려움과 관리자들도 포기하다시피 한 그 일을 자기가 나서서 바로잡을 필요가 없어서. 잘못된 줄 알지만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 맞춰줬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래서 어쩌면 더 막막했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구축해 놓은 높다란 성벽에 가로막힌 절망감. 불합리하고 이기적인데도 자기들의 밥그릇만을 위해 양보도 타협도 없는 모습을 보며 세상은 불공정해도 잘만 돌아가고, 단체가 만들어놓은 체제가 잘못되었음에도 아무도 나서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불합리와 부조리는 윗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 어느 단체에도 그것이 진리처럼 굳어지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매장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지지 않으려는 그 알량한 자존심에 많이 배운 정치인들도 유치한 말싸움과 비방전으로 일삼는데 하물며 그들보다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어쩌면 그들도 나를 소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볼지 모른다. 실제로도 그런 말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고 나는 그 말을 인정하기 싫은 입장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내 안에서 여전히 고개를 드는 건 내 느낌이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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