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발한 포도주

아까운 친구의 마음

by 글마루

퇴근하려고 차 문을 연 순간

달콤시큼한 내가 훅-

어라 트렁크에 과일을 두었었나?

생각의 끝자락을 물고 온 기억

친구에게 받은 포도주 한 병

고이 모셔두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했는데

분출한 잔해들이 여기저기

왁자지끌한 흔적을 남기고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을까?

끝끝내 폭발해 버린 포도주여

아깝다 포도주가 아니라

친구의 마음이

두고두고 아깝다

친구의 마음이


퇴근하기 위해 차 문열 열었는데 과일 썩은 냄새가 요동쳤다. 뭘까, 뭘까 혹시 트렁크에 과일을 깜빡하고 썩었나? 고개를 갸우뚱해도 생각나지 않다가 봄에 친구가 손수 담근 포도주 한 병이 생각났다. 아직 날씨가 많이 덥지 않아 괜찮겠거니 했는데 트렁크 안에서 폭발했다. 뚜껑이 통째로 어딘가로 날아가고 빈 병엔 한 모금 포도주만 남긴 채 바닥에서 끈적끈적 뒹굴고 있었다. 물걸레로 몇 번 끈적이는 얼룩을 닦아냈다. 트렁크가 포도주로 샤워한 날이다.


친구가 애써 담은 귀한 포도주가 아까워 속이 쓰리다. 친구의 얼굴이 자꾸만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공중에 분출한 포도주보다 친구가 내게 준 마음이 아깝고 미안하다. 이걸 안다면 친구는

"가시나야, 너 먹으라고 줬지. 누구 선물하라고 줬는줄 아나?"라고 한바탕 쏘아대며 어쩌면 또 한 병 챙겨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정이 많고 착한 친구이다.

친구의 마음을 허공에 버린 것 같아 속 쓰린 밤이다. 병 바닥에 남은 포도주 한 모금으로 체면치레한다.

달달하고 맛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상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