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가 익기까지
대접 속의 총각무가 뽀얀 속살을 드러내었다.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의 나신을 지그시 국물에 반쯤 담그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누구를 유혹하려는 것일까. 쳐다보기만 해도 벌써 군침이 싹 돈다. 숟가락을 들어 부연 국물을 떠 입에 넣는다. 먼저 입안으로 시원함이 와 닿고 뒤따라 체한 속이 뻥 뚫리기라도 할 것처럼 적당히 쏘는 국물이 혓바닥을 거쳐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국물 한 모금에 뱃속까지 시원해지며 기억은 유년의 겨울밤으로 역주행한다.
겨우내 함박눈이 전설처럼 쌓이고 또 쌓이는 산동네에 우리는 살았다. 찬바람이 벌에 쏘인 듯 따가운 겨울은 마을을 동굴처럼 가둬 놓는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은빛이었다. 흰색보다 더 맑고도 뽀얀 눈 위로는 겨울 해가 반사경처럼 비치는 바람에 눈을 찡그려야만 했던 나날.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친 산 아래로 넓지 않은 들이 펼쳐지고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열심히 농사지으며 도란도란 인정을 나누던 마을 사람들. 지금은 열 손가락을 헤아리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마을의 가구 수이지만 예전에는 고샅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로 제법 흥성거리기도 했던 곳.
된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턱밑까지 가까워지기 전 사람들은 겨울 맞을 준비를 했다. 배추를 몇백 포기 절여 김장하고 어린아이 궁둥짝같이 토실토실한 무로 동치미를 담갔다.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고 무를 짜게 절인 후 삭힌 고추와 쪽파, 마늘, 생강 넣고 항아리 가득 무를 눌러 담는다. 그 위를 소금물 심심하게 타서 채우면 시나브로 동치미는 익어간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수학 공식처럼 딱딱 들어맞는 날씨 덕분인지, 샘에서 흘러나온 물맛 덕분인지, 동치미는 실패를 보는 법 없이 기막히게 잘 익었다.
김장김치가 지겨워질 때면 꺼내 온 것이 동치미다. 회초리보다 매서운 한파에 짚으로 엮어 지붕을 씌운 움집 아래 땅에 파묻은 독에서 엄마가 떠온 동치미 국물은 얼음 반 물 반이었다. 얼음 서걱서걱 씹히는 동치미 국물은 한 모금 들이마시면 온몸이 찌릿찌릿한 것이 찬 기운에 머리까지 띵해 왔다. 도배도 제대로 되지 않은 바람벽에서는 외풍이 선득선득해 누워있어도 코가 시릴 정도였지만 얼음 범벅인 동치미 국물을 마다하는 식구는 없었다. 엄마가 김장독에서 동치미 한 사발 떠오면 맨 먼저 아버지가 대접 채로 국물을 들이켰는데 쭉쭉 소리 내며 마시는 것이 갈증이 날 대로 난 것처럼 보였기에 우리 자매들도 동치미 국물을 저마다 돌아가며 한 모금씩 들이켰다. 그런 후엔 무를 크게 한입 베어 와작와작 깨물어 먹었는데 아삭한 맛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결혼하고 살림하며 그 옛날 엄마의 동치미가 그리워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매번 실패하고 먹지도 못하고 버린 적이 있다. 그 옛날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배, 사과까지 넣어도 자연스러운 맛이 돌지 않아 냉장고에 보관만 하다가 버려야 했기에 동치미는 아련한 추억의 맛이 되었다. 버리자니 쓰레기요, 식재료들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버릴 때면 다시는 담그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유년의 추억이 어디 동치미뿐일까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사는 게 바빠 뒤돌아볼 새도 없이 허겁지겁 앞만 보고 달렸다. 마치 등산할 때 산수 구경은 하지 않고 죽자 살자 정상만 보고 오르듯 달려온 길은 허무하기만 했다. 표나게 손에 잡힌 것도 없이, 쫓기듯 강파르기만 한 시간. 세상의 고난은 혼자 짊어진 듯 암담하기만 했다. 그런 나를 지탱해준 것은 아마도 고향에서의 추억이 아닌가 한다. 고향 집 하면 부모님이 떠오르고 동치미 국물을 갈증 난 듯 들이켜시던 아버지의 검붉은 얼굴과 대접 가득 얼음 서걱서걱한 동치미를 떠다 주던 엄마의 모습이 삽화처럼 다가왔다.
내 땅 한 마지기 없이 농사짓느라 가난을 베개 삼듯 살아오느라 부모님 고생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우리 자식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프다 못해 허기가 지니 물리적인 허기뿐 아니라 마음에도 허기가 진 적이 많다. 없는 집 자식이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주눅 들고 의기소침하게 성장했기에 부모님을 잠시 원망하기도 하고 인정이 메마른 적도 있다. 아이를 낳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에게 너른 품을 내어주지도 마음껏 사랑해주지도 못했다.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마음의 허기가 지지만, 자식에게 주지 못하는 마음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을 부모가 되어서야 알았다.
누군가는 운명을 수레바퀴에 비유하고는 한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수레바퀴에 매달린 채 바퀴가 구르는 대로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의지로 수레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일까. 수십 년 우리는 수레바퀴를 따라 구르기도 하고 운명에 거슬러 바퀴의 방향을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흘러왔다. 이제는 운명을 적당히 구슬리기도 하고 타협도 하며 걸어간다.
동치미가 익기 위해서는 은근한 끈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급해 급하게 익히면 새콤한 맛은 나지만 깊은 맛은 나지 않는다.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동치미 속의 무와 양념들이 어우러지고 곰삭아져 자연스럽게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인간이 삶의 경험으로 무르익듯.
동치미가 익기 위해서는 속에 넣는 신선한 재료가 필요하지만 적당한 양과 조화가 중요하다. 재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려면 자기 색깔만 내면 곤란하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누그러뜨리고 어우러져야 제맛이 나는 것이다. 사람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굴욕감도 견뎌내고, 아픔과 슬픔도 참아내며 살았을 때 작은 보람이라도 맛보듯, 모난 성정을 다듬고 조화롭게 살아가야 사람 사이도 동치미 국물 같은 깊은 맛이 날 것이다.
지난겨울에는 다시 동치미 담그기에 도전했다. 옛 어머니의 마음으로 신선한 재료로 정성을 다하여 옹기 항아리에 무, 쪽파, 마늘, 생강, 배 등을 넣고 찹쌀풀 쑤고 소금물로 간했다. 모든 재료를 일일이 손질해 음식을 하는 일은 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재료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그동안의 살림 감각과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껏 담갔다. 이 주 가량 지난 후 조심스레 국물을 맛보았다. 순간 그 옛날에 먹던 알싸하고 시원한 맛이 뱃속까지 짜릿하게 넘어간다.
그 순간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양푼 한가득 살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를 떠 오는 엄마의 모습이 소환된다. 없는 살림 꾸리고 농사일에 시달리며 1남 4녀 키우기 바빠 자식 모두 살뜰히 챙기기는 어려웠을 거라는걸 중년이 동치미처럼 무르익고서야 부모님이 이해가 간다. 자식에게 넉넉하고 푸근하게 품어주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시렸을까. 그때처럼 추운 겨울밤, 동치미 국물 한 국자에 아버지의 시원하다는 음성이 귓전에서 들려오고 엄마의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