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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by 글마루

흔히들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고 비유하지만 부모님의 싸움은 그야말로 살벌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잘못이라면 엄마와 잦은 싸움으로 우리에게 불안한 심리와 공포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해 자라면서 아버지를 많이 미워하고 증오했었다. 부부싸움의 끝에는 언제나 엄마의 눈물이었기에 엄마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던 내게 아버지는 적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릴 때 바른 소리를 무척 잘했다. 동네 할머니도 인정할 정도로 바른 소리 잘한다고 친구가 듣고 이야기해줄 정도로 내 생각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었다. 한마디로 내 말이 다 옳다고 여긴 것이다. 거기에는 아버지도 한몫했는데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옳다고 인정해 주니 나는 자신에 대한 신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아버지와 엄마가 싸울 때면 가끔 내가 끼어들어 바른 소리 한 마디로 싸움이 그친 적이 있다. 너무 당돌하고 맹랑한 서너 살 먹은 딸이 사리에 맞는 말을 똑부러지게 하니 어안이 벙벙해진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된 기억이 있다. 사실 그렇게 끼어들기까지 어린 나도 적잖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중재가 성공하고부터는 그 방법을 자주 써먹었고 여러 번 성공하는 쾌거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과에도 받아주지 않는 엄마의 고집으로 인해 부부싸움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될 때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온 집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급기야 겁을 먹은 우리 세 자매는 이불을 덮어쓰고 엉엉 울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싸우면 겁이 나면서도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우는 부모님께 이렇게 싸울 거면 차라리 이혼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식 보는 데 부모가 싸워서 무슨 교육이 되느냐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당돌한 말을 서슴없이 했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한 대상은 나였다고 한다. 다른 식구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아버지가 내 말 한 마디라면 겁을 먹는다고. 아버지에게 바른 소리 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아버지의 답답한 성격으로 싸우는 거니 너라도 나서야 한다고. 그런 엄마의 주문에 그땐 무조건 엄마 편이었기에 아버지께 이렇게 싸울 거면 우리도 힘드니 집을 떠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엄마에게는 그토록 포악하게 하던 아버지는 내 말 한마디에 어쩌지도 못하고 기가 푹 죽어서는 집밖으로 나가서 맴돌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아버지가 내게 꼼짝 못했던 것은 아무리 사리에 맞는 말을 해도 내 말이 두려워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어릴 때 주변 친척들이나 선생님께도 반듯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는 해도 딸에 대한 믿음과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에 져줬던 것은 아닐까. 동네에서는 한 성질한다고 알려진 아버지가 유일하게 꼼짝 못해서인지 나는 내 생각이나 행동은 언제나 옳다는 그릇된 명제를 가지고 때로는 독선적일 때가 있었다.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부부간 의견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아버지 때문이라며 엄마 편을 들 것을 세뇌하듯 하던 엄마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지 가끔 "너 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어느 연예인이 부부란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없어도 불편하다고 했는데 아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직도 부부싸움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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