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보였다. 예쁜 것보다는 뭔가 고집이 세 보이는 한 아이가 오른손에는 무궁화 가지를 꺾어 서 있었다. 바로 나였다. 난 내 기억인지 아니면 아버지 말씀에 착각 현상인지 그 장면이 어렴풋하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진을 찍었다. 오로지 세 자매 중 나 혼자만의 독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니 또다시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면 세 자매 중에서 유독 내 독사진만 찍어주었을까? 밥도 겨우 먹는 어려운 살림에 사진사까지 불러서 찍어주었으니 아버진 나를 끔찍이 여긴 게 분명하다. 독사진 세 장을 아주 소중히 보관하며 틈만 나면 그 사진을 보여주고 네가 그렇게 예뻤노라고, 세상에 너처럼 예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물론 고이 간직하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내가 힘겨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삶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하늘에서 지켜보는 아버지가 계실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내가 좌절하거나 잘못 살면 아버지가 통곡할 것이기에. 가뜩이나 검은 피부가 햇빛에 그을려 더 새카만 얼굴에 눈물을 흘리게는 하기 싫었다. 살아생전 호강도 못 시켜드렸는데 하늘나라에서까지 나 때문에 눈물지으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껏 고비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추억이 많아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글만 해도 수십 편은 족히 된다. 내 인생의 모든 부분, 아니 나를 유일하게 인정하고 알아주신 단 한 분이기 때문일까. 그런 아버지께 나는 독하고 가슴 아픈 말을 퍼부어대었었다. 우리 집의 가난도 이따금 일어난 엄마와의 불화도 아버지 때문이라며 원망했었다. 아버진 건방진 내게 아무 말도 못 했다. 차라리 건방지다며 뺨이라며 때렸다면 이렇게 내가 괴롭고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져줬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 말처럼 난 그렇게 빼어나게 아름답지도 않고 월등하게 두뇌가 뛰어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밖에 되지 않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함함하다고 한다.'는 말처럼 내가 잘나서가 아닌 아버지 자식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 눈에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똑똑하고 예쁜 딸이었다. 내가 가슴 저리도록 안타까운 것도 나를 희생하다시피 보살펴드린 엄마보다 무시하고 미워한 아버지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한 번도 감정을 실은 적이 없이 웃음으로 넘기던 불쌍한 우리 아버지, 언제나 기특하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은 우리 아버지, 난 내 눈 감는 순간까지 아버지를 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못나 보이는 아버지라도 내게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사람이란 걸 이제 알았다. 아버지, 정말 정말 죄송해요……용서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