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열전

by 글마루

한비는 한나라 사람으로 일찍부터 벼슬아치 노릇을 했으며 그의 학문은 노자의 학설을 바탕으로 한다. 책을 잘 썼으나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 유세는 잘하지 못했다. 한비는 한나라가 점점 쇠약해 가는 것을 우려해 한나라 왕에게 여러 차례 글을 올려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비는 유가 사상이 글로 나라의 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협객은 힘으로 나라의 율령을 어긴다고 생각했다. 청렴한 선비가 간신 때문에 기용되지 못하거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슬퍼하고 옛 왕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과정을 「고분孤憤」, 「오두 五蠹」등 10만 여자의 글을 지었다. 특히 한비는 유세의 어려움을 깨닫고 「세난 說難」편을 매우 자세하게 지었음에도 결국에는 이사의 모함에 의해 진나라에서 죽는다.


간발의 차이로 인해 한비가 죽고난 후 진시황은 매우 안타까워했는데 진나라의 건국이나 통치에 한비의 '법가사상'을 반영한 정책을 펼쳤다. 한비가 주장한 '법가'는 강력한 나라의 힘에 기원한다. 상앙의 '법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이들에게 법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오직 군주는 예외로 하였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비의 재능을 시기한 이사의 모함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비는 진시황에게 등용되어 진나라의 통치기반에 큰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 역시도 그가 만든 '법'으로 인해 상앙처럼 더욱 참혹한 죽음을 맞았을까?


한비가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강한 법으로 백성을 통치해야 한다고 했던 상앙이 자기가 만든 법에 죽임을 당했고, 술述을 강조한 신불해가 있었으며, 세勢를 강조한 신도가 있었다. 원래 사상이나 학문이 아무 것도 없는 제로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이 변화, 발전해서 새로운 것으로 탄생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두고 '창의적'이라고 한다. 창의적이라는 말은 기존에 있던 것을 수정, 보완해 재작성하는 '재구성'을 의미한다. 한비는 기존에 있던 사상을 두루두루 수용해 보완하고 발전시켜 '법가'라는 학설을 구축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고 집행하는 것에 통일성이 있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과 감정에 기반해야 하고, 분명하고 명확해야 하며, 상은 두텁게 하고 벌은 엄중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함에도 군주가 법을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현재적 관점에서의 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긴 하다. 당시는 기원전으로 인권보다는 나라의 존치나 부강을 우선으로 한 시대였기에 '인권'이 정립되기 전이다. 법이 군주 아래에 있기에 그 법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명석하고 현명한 군주를 필요로 한다.


유가의 사상과 결을 달리한 노자, 장자에 이어 한비자가 가장 혹독하게 비판했는데 한비는 순자의 제자였기에 '성악설'을 주장했다. 그 이유로 아들과 딸의 차별에 대한 부모의 이해관계를 든 것이다. 남녀차별이 만연해 있던 고대시대에도 그런 인식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도덕성만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다고 보았다. 잘못된 도덕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직 '법'만이 백성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순자가 인위적인 교화에 중점을 두었다면 한비는 상과 벌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사실 상과 벌은 행동주의 발달 이론에 따른 '보상'과 '강화'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한비가 저술한 책으로 인해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비가 법치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나, 역시 완벽함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법. 한계점을 들자면 그 법치가 온백성을 위한 게 아니라 오직 군주만을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비를 지나치게 혹독한 법치로 인해 인간의 선한 면까지 말살한다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도덕만으로 사회의 질서가 잡힌다면 법이 왜 필요할까? 갈수록 도덕성이 상실되고 있는 이때 '법'이라도 있어 그나마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법이 너무 가혹하면 아예 그 법을 지키지 않고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너무 무르면 도덕적 해이감을 야기할 수도 있다.


법이라는 것도 인간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보았을 때 어쩌면 법은 '필요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또한 법 위에 올라앉아 법조차 좌지우지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다. 법과 도덕 이 보이지 않는 규범이 양쪽 저울처럼 무게 중심을 잘 잡았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나마 살만 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세상을 참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보다는 적절히 지탱해 나가는 것. 그것이 최상의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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