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직장 4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

by 글마루




시간이 좀 지나자 나를 대하는 C대리와 J상무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회사의 대표인 사장은 매일 출근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리곤 했다. 회사에 출근할 때면 부인과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온 적도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사장이 출근하면 총관리자인 J상무는 사장 눈치를 봤고 굽신거렸다. 내게는 호랑이 같던 상무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장실은 우리가 쓰는 사무실 문으로 들어가면 안쪽에 있었다. 책상 하나와 소파와 탁자가 있었고 사장이 입은 옷처럼 희고 정갈했다.


J양도 결국 떠나고 나와 N양이 남아 거의 사무실을 지켰다. 사장이 출근하던 어느날, 상무가 나를 사장에게 인사시켰고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장은 간단히 내 이름을 묻더니 "서 양아, 설록차 한 잔 가져와라."라고 말했다. '설록차'는 티브이 광고에서나 봤지 마신 적도 없었기에 우물거리자 N양이 가르쳐줬다. 당시 '태평양 설록차'의 티백의 포장을 벗기고 하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됐는데 특이하기도 사장은 설록차에 설탕을 한 스푼 넣는 습관이 있었다. 내게 차 심부름을 시킬 때면 "서 양아, 설록차 한 잔만 가져와라. 설탕 한 스푼 넣어서."라고 주문했다. 나는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차를 대령했다. 사장과 상무는 내 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다 들리게 아직 어리고 업무처리가 미숙하다는 말이 들렸다. 그때부터 내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했는데 말이 사무직이지 온갖 잡무를 떠맡는 그 자리에서 밀려나면 인생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새끼 사슴이었다.


윗분들은 나를 잠시도 그냥 두지 않았다. 사장실 책상은 물론 구석구석 쓸고 닦으라고 했으며 심지어 사장은 자신이 신던 하얀 운동화를 내게 빨아놓으라고 지시했다. 모멸감이 내 온몸을 훑었지만 나는 못하겠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사장의 운동화에 비누칠을 해 칫솔로 문질러 닦았다. 운동화를 닦을 때 내 처지가 가정부가 된 것 같았고, 나라는 존재가 비누처럼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공장에 근로자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회사에 취업한 내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급여에 시설 좋은 기숙사, 고품질의 식사를 제공받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한 달처럼 지루하게 근무하던 중에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과 검단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검단실에 심부름을 갈 때면 소아마비로 다리를 심하게 저는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그 회사 입사하고 살이 더 빠진 것 같다며 "서 양 마른 것 보면 너무 애처로워요. "라고 하며 내게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는데 그 말조차 동정 같아서 듣는 게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몸이 불편한 그가 작업하는 게 더 애처로웠다. 2 검단실에 있던 언니가 가장 성격이 털털하고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들이나 나나 자본주의의 모순된 구조속에서 착취당하고 있었기에 서로를 가엾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공장에 자신들의 시간과 육체를 저당잡혀서 푼돈으로 연명하는 신세였다.


초침이 잠시도 쉬지 않듯 공장의 기계 역시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갔다. 시간이 흐르자 공장의 연기 냄새가 역겹지 않을 만큼 익숙했다. 불량이 나면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대구 염색공장으로 가서 불량을 처리하고 짜장면을 사 먹었다. 기숙사에 여공들이 회사 밖으로 나갈 때면 사무실에서 외출증을 끊어서 관리했는데 나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정문 근처에서 시멘트를 개어 작업을 하고 있던 상무가 외출하려고 나가려던 여학생 두 명에게 갑자기 "하니(honey)"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여학생 두 명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때 상무의 눈빛은 매우 음흉했다. 나는 '하니'가 '벌꿀'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왜 어린 학생에게 그렇게 부르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소녀들이 매점에 갔다가 정문으로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로 '하니'라고 불렀다. 둘 중 하나는 매우 예쁘장했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상무가 침을 흘린 듯 싶다. 소녀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서둘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땐 눈치가 없어 상무의 음흉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이 흘러 그 호칭이 사귀는 연인에게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 그 상무는 자기 딸뻘인 그녀들에게 추파 던지듯 '하니'라고 불렀는지 아직도 의문으로 남는다. 내 눈으로 확인된 건 없지만 그 호칭에 담긴 의미는 어린 소녀를 희롱했다는 것이다. 그 호칭을 반길 리 없는 소녀들이지만 선뜻 나서서 왜 그렇게 부르느냐고 따지지도 신고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때 사회적 분위기는 폐쇄적이었다. 지위나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농락당하고도 저항하지도 못했고, 당한 여성 잘못으로 모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피해자인 여성이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 하는 불합리함.


사무실에 내 편은 하나도 없었다. N양은 같은 여직원의 처지임에도 내게 업무를 상세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쌀쌀맞았다. 상무가 내게 검단실에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있은 후 집에 전화하니 엄마는 힘들어도 무조건 참으라고 했다. 내 기대는 힘들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이었는데 힘겹게 공중전화 수화기를 놓았다. 사무실에서 속 얘기를 하기는 편치 않아 밖에 공중전화로 다시 담임선생님께 다이얼을 돌렸다. 내 소식을 궁금해하던 선생님은 내가 사무 외 청소, 심부름 등 잡무를 도맡는다고 하자 단번에 "내 이누무 현자 그 자식 혼내야겠다. 왜 그런 데를 소개했노? 힘들면 언제든지 학교로 돌아온나."라고 하시며 자식의 일처럼 속상해하셨다.


어느 날 사장이 아는 거래처에 여직원이라며 한 명을 데리고 왔는데 내가 자리에 있는 걸 보자 그녀는 사람이 있는데 안 오겠다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동안의 울분이라도 토하듯 상무에게 "상무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동안 하라는 대로 온갖 심부름을 다 했는데 사람 앞에 두고 새로운 사람을 데려온 것은 저를 무시하시는 겁니다. 저도 이렇게 무시당하며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상무는 "서 양아, 누가 뭐라고 하더나? 사장님이 인사차 데려온 것인데 고만 참고 있어 봐라. 네가 어려서 그렇지 지내다 보면 차차 나아지겠지."라고 했다. N양 역시 내가 그만두면 당장 자기가 허드렛일까지 해야 했기에 내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 회사에 만정이 떨어졌다.


내가 경험이 없고 나이가 어려 부족하다고는 해도 신입을 배려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이누마, 네가 뭐가 못 나서 그런 허드렛일을 해야 하냐? 내 당장 달려가서 따지고 싶다."라며 다른 데 취업하면 된다고 하셨다. 12월 구미를 떠나던 날 나는 가져갔던 가방을 들고 전 직원에게 제공했던 시퍼런 패딩을 입은 채였다. 검단실이나 식당 아줌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고생했다고 인사했지만 사무실에 N양이나 상무는 인사하는 내게 무표정일 뿐이었다. 자식뻘인 내게 온갖 잡무를 시켰으면서도 "상무님, 저 갈게요."라고 인사하자 단 한 마디 "그래."라는 답변만 돌아왔고 N양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패배자처럼 울분을 삼키며 다시는 구미 땅에 발을 밟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너처럼 영특한 아이에게 감히 함부로 대했느냐며 노여워하셨지만 찾아가서 따질 만큼의 용기도 지식도 없었다. 엄마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게 공장이든 어디든 가라고 하셨다. 나는 집에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돼 같은 반 친구의 설득으로 구미공단에 있는 현장 근로자로 입사했다. 반에서 일 등하는 그 친구도 취업되지 않는 마당에 그보다 못한 내가 좋은 직장을 갖는다는 건 요원하기만 했다. 나와 공부를 비슷하게 상위권에 있던 친구와 셋은 1988년 1월 또다시 구미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내는 걸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선생님 역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시 가기 싫은 구미, 게다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공순이'이가 되었고 그 한 번의 실패로 인해 나는 사무실에 근무할 엄두를 못 냈다.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가 주는 말의 위력이 한 사람의 인생까지 바꿔놓을 줄이야. 지레 포기한 내 인생은 이후 이십 년의 암흑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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