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프리지어 한 다발의 행복
※ 2020년 6월 월간샘터 '행복일기' 수록
원문: 프리지어 한 다발의 행복
마트 입구에 프리지어 꽃을 포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다발로 팔고 있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경제는 바닥으로 내려꽂히고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기관이나 공공시설물은 폐쇄된 곳이 많고 휴직자나 실업자가 넘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가능하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여간해서는 병원도 가지 않는다. 바이러스 검사한다고 괜한 번거로움을 당하기도 싫거니와 자칫 바이러스를 옮을까 걱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꽃이 팔릴 리가 없다. 여느 때 같으면 최소 3만 원은 지불해야 되는 탐스러운 꽃이 만 원도 되지 않는다니. 9,800원이라는 돈이 내겐 적지 않지만 살까 말까 망설이다 집어 들었다.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도 꽃을 사는 건 사치가 아닌가 생각해봤다. ‘꽃은 밖에서 감상하고 그 돈으로 찬거리를 사면 훨씬 경제적일 텐데···’라는 생각이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맴돌았다.
집에 와 장 본 것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꽃병을 찾아 몽우리만 살짝 내민 프리지어를 꽂고 물을 담았다. 거실 탁자 위에 놓고는 다음날은 출근하기 바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꽃봉오리를 조금 더 열고 있었다. 코를 대어 보니 프리지어 향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저녁을 먹고 또 잠을 자고 아침이었다. 어항에 물고기 밥을 주고 탁자를 보니 프리지어가 노란빛을 뿜으며 어제보다 더 팔을 활짝 벌렸다. 꽃병 채로 집어 향을 맡아본다. 처음보다 더 짙은 내음으로 내 마음을 콩콩 두드린다.
갑자기 꽃을 산 것은 봄이 왔다고 친한 친구가 꽃 시장에 가서 꽃 구입한 것을 채팅방에 올린 것이 떠올라서였다. 친구는 바질, 카랑코에, 캄파눌라, 다육이에 하트 모양의 선인장까지 샀다고 사진을 올렸다. 화초들을 보니 봄 냄새뿐 아니라 뭔지 모를 설렘, 희망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시간 내서 화분이라도 몇 개 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퇴근하면서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이 때문인지 건망증이 생긴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일부러 내 기억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전에도 몇 번 봄꽃 화분을 산 적이 있었으나, 우리 집에 온 뒤로는 꽃이 영 시들시들한 것이 살 때처럼 싱싱하지 않기 일쑤였다. 결국, 꽃 감상은 며칠로 끝났다. 나중에는 다 시든 꽃과 화분을 버리는 게 번거롭다 보니 그런 기억으로 주저했는지도 모른다.
프리지어가 화려할 정도로 아찔한 향을 뿜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향기가 그리 진하지 않았다. 뭐랄까 상큼한 녹색 향이라고 해야 할까. 그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이미 꽃값을 치르고도 남음이었다. 잠시 잠깐이지만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행복은 하루종일 끌지 않아도 된다. 지루하고 바쁜 일상 속에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어도 좋다.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것이 진정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린 꽃잎이 발산하는 향기를 맡으며 느끼게 되었다. 가끔 아주 가끔 내게 꽃 한 송이 선물할 여유를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