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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를 향해 미소 짓는 할미꽃

by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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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6월 월간샘터 '행복일기' 수록


원문: 할미꽃의 미소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 중인데 문자음이 울린다. 입사한 지 두 달 남짓, 예상보다 많은 업무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짬을 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노노케어’라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참여 어머니였다. 사업 초기 참여자 선발을 할 때 전화를 걸어오셨고 사무실에도 몇 번 들리셨는지라 얼굴과 성명까지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노인일자리 담당자이다. 사업단에 참여할 어르신들을 선발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2개의 사업단에 150여 명의 어르신들을 관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종일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고 처리해야 할 서류는 끝없이 이어져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왔다 갔다 하고는 했다. 어렵사리 얻은 직장인지라 열심히 해서 자리매김을 하겠다는 각오와는 달리 ‘노인일자리’ 업무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신청한 일자리 사업에 탈락했다며 전화로 원망을 하고, 시청이나 세무서에 찾아가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하고, 사무실로 찾아와서 형편이 어려우니 일하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 등 갖가지로 사례가 다반사였다. 어르신들 개별적인 사연을 들어보면 딱하지 않은 댁이 없다. 자식이 잘살아도 자식에게 기대지 못하는 현실인데 자식 살림도 팍팍하니 생계를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노년의 삶이 안쓰럽기만 하다.


90세 가까운 노구를 구부러진 등으로 2층 계단을 올라 사무실에 들어오시면 숨이 차다며 헐떡이신다. 저승꽃이 핀 얼굴에는 주름이 골짜기를 이룬다. 까맣게 그림자가 덮은 얼굴, 늙은 모습을 본다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는 않다. 젊은 아가씨처럼 향수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노인 냄새가 먼저 코를 자극한다. 그렇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따라갈 것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냄새가 정겨워진다. 차나 커피 한잔을 대접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에서는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선다. 하지만 인정에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과 사의 갈림길에서 결국 애달픈 사연을 가슴에 누르고 어르신을 댁으로 돌려보내야만 하는 심정에 마음이 저려온다. ‘내가 능력이 된다면 저 어르신들 도와드릴 수 있을 텐데….’


귀가 어두워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담당자들은 큰 소리로 말하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어르신들에게 예의 없게 비칠 때가 있다. 정말 예의가 없어서라기보다 안 들리니 억지 방편으로 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쪽에서 말하면 어르신들은 동문서답이시다. 제대로 안 들리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지만 듣는 사람도 답답하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때로 어르신의 엉뚱한 대답에 빵-하고 터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무실이 아수라장일 정도로 소란스럽다.


하루 3시간, 한 달에 10일을 활동하면 받는 활동비가 27만 원이다. 젊은이에게는 한 달 용돈도 안 되는 소액이지만 참여 어르신들에게는 목숨줄이나 마찬가지로 귀한 돈이다. 대부분이 70세 이상의 고령이니 문맹에 가까운 분도 많다. 많이 배워야 중학교 졸업이고 아예 무학도 있으니 일지 쓰기의 어려움이야 불 보듯 훤하다. 그렇지만 일지는 직접 작성하는 게 원칙이니 대신 작성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줘도 매번 틀리게 작성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런 실랑이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달이 지나간다. 그러니 친구에게 문자 보낼 시간도 소통할 시간도 없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혼란이 올 때가 있다.


그 와중에 김**어머니가 보내온 문자가 경직되어 있던 내 얼굴을 풀리게 했다. 격무에 시달려 웃음을 모르고 살아온 시간이었다.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을까?’ 혼자 반문을 거듭하며 내 시간을 죽인다는 심정으로 지나온 날들. 나를 힘들게만 하는 어르신들이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해주신 것이다. 이제 80세라는 연세에 문자 내용은 젊은이 못지않게 또박또박하다. “서혜린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제 날짜에 모여 열체크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정신없는 노인들과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대로 재미를 붙여보세요. 할만합니다. 그럼 이만 인사 올립니다. -저는 김**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


웃는 얼굴 이모티콘과 하트가 몇 개인지 세기도 어려울 만큼 담겨있다. 어르신 다섯 분의 인증샷까지 덤으로 보내신다. 문자를 보는 순간 나는 한참 목이 말랐을 때 맑고 시원한 샘물을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갈증이 사라진다. 혼자 전전긍긍, 반신반의했던 고뇌의 시간이 찰나처럼 스쳐 가고, 반가움에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문자 너무 감사하다고. 어머니들 모습 보기 좋다고.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신다. 자신들이 나를 힘들게 해 혹여 내가 직장을 그만둘까 봐 미안하다며 힘들어도 버티다 보면 좋은 날 올지 모른다는 말씀에 그간의 어려움이 안개 걷힌 듯 싹 사라진다.


이후로도 어머니는 자주 근황을 알려오신다. 북천의 벚꽃이 활짝 핀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신다. 진분홍 점퍼를 입으시고 선글라스까지 끼시고 제법 멋을 부리셨다. 활짝 핀 벚꽃처럼 어머니의 얼굴도 활짝 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마만의 웃음인가. 도무지 끝나지 않을 업무와의 싸움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사연이 내게 봄꽃처럼 다가온다.


어느 날은 아파트 화단에 핀 할미꽃 사진을 보내오신다. 나는 할미꽃이 어머니처럼 참으로 예쁘다며 답신을 보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감동이라고 하신다.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할미꽃만큼 예쁜 꽃도 없다. 꽃이 고개를 숙여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를 연상시켜서 꽃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어머니가 할미꽃이 되어 나를 보고 배시시 웃음을 짓는 것만 같다. 기운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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