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잎 소리
뒤꼍 대숲에서 싸르륵 댓잎끼리 서로 몸을 부딪힌다. 소리도 옷을 갈아입는 걸까. 계절이 연주하는 음률에도 차이가 있다. 봄비가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는 날이면 대나무도 숨죽이며 빗물을 머금었다. 빗물 머금은 땅속에서는 예고도 없이 죽순이 사람 키만큼 쑥쑥 자란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려고 하면 숲에서 대나무들이 쏴-아 쏴-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댓잎도 소리 없이 소복소복 이불을 덮는다.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한 크리스마스카드에서나 볼 수 있는 성탄절의 풍경이 동화 속처럼 정겹다. 눈 쌓인 대나무가 댄서처럼 유연하게 허리로 포물선을 그린다.
내 유년의 집 뒤꼍에도 대나무 숲이 우거졌는데, 바람이 성난 듯 사나워지면 대숲도 함께 울었다. 방안에 들어앉아 있어도 휙휙거리는 소리가 생생했고, 창호지 바른 문에 댓잎의 그림자가 어렸다. 그러면 나는 공연히 겁에 질리곤 했다. 그림자를 가리키며 아버지께 무섭다고 하면 괜찮다고 달래주시곤 했다. 그렇지만 바람이 아무리 세어도 좀체 꺾이지 않는 것이 대나무였다. 깊은 산중에 이따금 사나운 눈보라가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 거세져도 대나무가 울처럼 둘러쳐 있어서 안심이었다. 그것이 병풍처럼 우리 집을 감싸줬다.
초가집에서 살다가 기와집을 사서 같은 마을로 이사 갔다. 바로 옆에는 큰집이 있었다. 큰집의 뒤꼍에 대나무 숲이 빽빽했다. 처음부터 뒤꼍에 대나무가 무성한 게 아니라 큰집에 대나무가 뿌리를 뻗고 나와서 번진 것이다. 큰집에는 관리를 잘한 덕에 굵다란 대나무가 많았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은 사 가기도 했다. 농자재가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였는지라 그 대나무를 쪼개어 모판을 만들고 커다란 비닐하우스로 쓰기도 했다. 대나무는 가로로 쪼개지지 않는 대신에 세로로는 잘 쪼개졌다.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이 어울리도록 낫으로 탁 내려치면 기다렸다는 듯 세로로 쫙하고 갈라졌다.
봄이 되어 제법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대나무 숲 뒤의 동산에서는 삐죽삐죽 죽순이 얼굴을 내밀었다. 비 오고 난 후엔 자고 나면 불쑥불쑥 자라나는 놈들이 여럿이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니듯 일취월장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먹을 것이 궁해진 우리는 죽순을 꺾어 먹었다. 죽순은 매우 연해서 손으로 잡고 옆으로 비틀면 빠지직하면서 쉽게 부러졌다. 대나무보다 더 굵은 죽순은 겉껍질을 벗기면 연하고 야들야들한 속살이 나온다. 죽순을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지만,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나면 허연 속살을 만지며 관찰하고 노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겉피를 다 벗겨낸 죽순은 속 알맹이에도 마디가 있었다. 다만 굳세게 자란 대나무만큼 마디가 간격이 넓지 않고 나이테처럼 촘촘히 붙어 있었다. 역시 대나무의 특성처럼 속대는 비어있었다. 땅을 뚫고 나온 지 오래된 것들은 줄기가 억세어 먹을 수 없었다. 겨우 꺾어 몸피를 벗기고 세로로 자르면 빈속이 드러났다. 그 마디의 사이를 허연 막이 벌써 치고 있었다. 그것들을 꺾지 않고 놔두면 며칠 만에 키다리 대나무가 된다.
대나무의 성장력은 실로 놀랍기만 하다. 불과 이삼일 만에 키가 장대만큼 자란다. 죽순이 굵으면 대나무도 굵게 성장하고 가늘면 가늘게 성장하는 것이다. 하늘과 맞닿은 우듬지는 얼마나 높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숲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바다처럼 넓고 파랬다. 나는 그 푸른 바다에서 조각배 타고 노니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대숲은 이렇듯 유년의 내가 끝 모를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은하수와도 같았다.
우리 자매는 대나무 숲에 자주 가서 놀았다. 대나무 숲 입구에는 예전에 할아버지가 서당 삼아 쓰시던 정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제자들에게 한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나보다 한참 위인 사촌오빠들은 한때, 할아버지께 천자문을 배우느라 야단을 꽤 맞았다고 한다. 낡고 쇠락해가는 정자에서 할아버지가 제자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돌아가실 때까지 흰 수염에 상투를 틀고 언제나 정갈하게 한복을 입었던 할아버지였기에 선비로서의 기품이 엿보였다.
정자를 가로질러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비밀의 성처럼 숲 중간에 너른 공간이 있었다. 거긴 대나무 이파리를 깔아놓아 푹신푹신했으며 한여름에도 덥지 않았다. 위를 쳐다보면 오직 대나무 이파리만 보이는 그곳에 우리는 자주 놀러 갔다. 사촌오빠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도 가끔 해주던 곳이었다. 사촌 언니가 박 바가지에 옥수수나 감자 삶은 것을 먹으라고 가져다주기도 했다. 숲은 그야말로 쉼의 공간이자 여유의 공간이었다.
대나무는 생명력과 번식력이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재래식 부엌 흙바닥까지 뚫고 솟았다. 적당히 둘러쳐진 나무는 바람막이도 해줘 괜찮지만, 그 뿌리가 집안까지 파고들면 곤란했다. 그 뿌리란 놈이 워낙 강해서 잘라내도 또다시 자라나고는 했기에 나중에는 대나무 뿌리 캐는 게 숙제가 될 정도였다. 아버지는 봄마다 뒤꼍에 대나무 뿌리를 괭이로 찍어내는 게 일이었다. 평생을 소작농으로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 지긋지긋하게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가난이란 질긴 뿌리. 그 뿌리는 지독하게 들러붙어 부모님을 괴롭혔다.
끝도 없이 파고드는 질긴 뿌리는 부부싸움만 하면 끝날 줄 모르는 부모님과도 닮았다. 나는 부모님 싸우는 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우리 세 자매는 훌쩍거리며 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잘라도, 잘라도 없어지지 않는 독한 뿌리처럼 부모님의 다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손이 갈퀴가 되도록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살림처럼 다툼도 그에 비례했다. 그럴 때면 댓잎도 따라 울었다. 싸르륵 울음소리는 ‘폭풍의 언덕’의 거친 눈보라만큼이나 음침하고 우울했다.
그러다 쩌정-쩍 소리가 났다. 아마 커다란 대나무가 바람을 못 이겨 갈라지는 소리 같았다. 강인한 대가 갈라지는 소리에 내 가슴은 덩달아 철렁거렸다. 안방에서는 용암이 분출되듯 소리가 마구 폭발했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엉엉 울었다.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건 뇌성 같은 소리에 가슴은 찌그러진 깡통처럼 쪼그라들었다. 우리 자매들의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대숲도 그날따라 유독 거칠게 울어댔다. 부부싸움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대나무는 가장 번듯한 나무가 꺾이는 것으로 끝났다.
드디어 고요함이 시작되자 나는 잠이 들었고 뒤꼍에 나무들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폭풍이 몰아치고 간 듯 숲은 정적에 휩싸였다. 간간이 대나무 이파리들이 위로라도 하듯 서로의 뺨을 비벼댈 뿐이었다. 댓잎은 우리 집의 온갖 사연을 속속들이 들으며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다. 대숲의 바람 소리도 내 귀에는 기쁠 때 내는 소리와 슬프거나 무서울 때 내는 소리가 각각 다르게 다가왔다. 그들은 늘 우리 집에 귀를 쫑긋 세우고만 있는 것 같았다. 울울창창한 대숲처럼 내 어린 날도 시나브로 성숙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