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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

7. 칼

by 글마루

신접살림 나면서 장만한 부엌칼이 어느 순간 손잡이가 부러져나갔다. 날은 멀쩡하나 손잡이가 없으니 무용지물이 되었다. 순간 아깝기도 했지만 그만하면 오래 썼다싶었다. 칼날만 남은 것을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싱크대 한켠에 놓아두었다. 이십오 년이나 내 손과 함께 수많은 요리를 만들어냈다. 그만하면 제 역할, 값어치를 하고도 남은 셈이다. 더 아꼈더라면 아마 평생을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얼린 고기를 급히 자르느라 칼을 대고 절구 공이로 내려친 결과 손잡이에 실금이 갔다. 그런 상처를 안고도 꽤나 오래 버티긴 했다. 그릇 집에서 싼 가격에 장만했지만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했기에 미련이 남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툴기만 해 날에 베여 핏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손톱 귀퉁이가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서로 익숙하지가 않아 박자가 맞지 않은 탓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손에 익어 보기만 해도 두렵던 날이 어느 순간 내 손처럼 익숙했다.


과도가 있어 아쉬운 대로 며칠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카롭고 흉측하게 생겼지만 주방에서는 도마와 짝을 이뤄 터줏대감 격이다. 굳이 어느 것이 신랑이요, 어느 것이 각시라고 단정하기도 뭣하지만 짝 잃은 도마에게 어서 빨리 제 짝을 찾아줘야만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그 유명하다는 H브랜드의 칼에 눈길이 갔으나 오만 원이 넘는 거금을 선뜻 사기가 주저되었다. 목수가 자기 솜씨 탓하지 않고 연장 탓을 한다고 손맛 내지 못하는 사람이 칼 핑계를 댈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눈 딱 감고 과도와 칼집까지 세트로 구입하고 싶었지만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마침 지인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가자고했다. 그때까지 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보니 마침 주방코너였다. 만 오천 원짜리와 이만 원이 넘는 칼을 비교하다 돈을 조금 더 쓰기로 했다. H브랜드만은 못해도 그 역시 아주 생소하지만은 않은 낯익은 브랜드였다. 한 번 사면 어쩌면 평생을 쓸지도 모르는데 몇 천 원 더 쓰자싶었다. 막상 칼을 고르려니 그 모양세가 날카롭고 뾰족해 섬뜩함이 앞섰다. 가능하면 모양세가 덜 뾰족하며 잘 들것 같은 것으로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제발 잘 들기를 빌었다.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놈을 들고는 제대로 칼질하는 나를 떠올렸다. 왜냐하면 칼질이라면 자신 있기 때문이다.


감히 셰프라고 자부하지는 못해도 불량주부는 아니다. 음식도 중급 이상으로는 할 수 있고, 해놓은 반찬을 사서 먹지도 않는다. 오로지 내 손을 거쳐 만든 음식을 즐겨 먹는다. 내가 시장 봐서 다듬고 조리한 음식이 미덥기도 하지만 나는 음식 만드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굳이 쉽게 사먹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요리하는 과정이 창작하는 과정만큼이나 흥미롭다. 똑같은 메뉴라도 완전히 맛이 일치하는 요리는 전문식당 아니면 드물 것이다. 전문 요리사라도 약간의 미세한 차이는 날 터이다. 나도 그렇다. 닭볶음탕을 만들어도 재료의 크기나 양념의 가감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내가 만든 요리는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는 늘 말한다. 내가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말이다.


정들었지만 낡은 칼을 버리고 새 칼로 요리할 염으로 설렌다. 아침에 일어나서 당장 토마토부터 잘라봤다. 약간 묵직한 감이 도는 식칼이 토마토를 날렵하게 잘라낸다. 써는 감이 좋다. 적당한 묵직함에 잘 드는 칼이라니, 점점 더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한 가지 숙제가 생겼다. 나와 동고동락한 칼날을 어찌 처리해야 좋을지 신중히 생각해봐야겠다. 새로 산 칼과 비교하니 본새가 영 서글펐다. 마치 그동안의 내 고달픈 삶과 닮은 듯했다. 전전긍긍하며 살다보니 어느덧 반평생, 행색 초라하기는 저나 나나 다를 바가 없었다. 새 칼에 비해서는 칼이라고 이름 내밀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오랜 세월 내 손과 함께 했기에 초라하지만 선뜻 버리기가 저어된다. 제 소임을 다한 칼날이 버리지 말라고 내게 애원하는 것만 같다.


물건이 넘치는 세상에 선뜻 버릴 수도 있지만 내 반평생을 나와 함께 내 눈물을 보고 동고동락을 함께 했으니 고이 간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두꺼운 종이에 잘 여미어 두고두고 보관해볼까도 싶다. ‘가보’라고 명명하기도 뭣하지만 먼 훗날, 내 머리에 백발이 성성해지는 날이 오면 젊은 날 나와 함께한 그것을 한 번쯤은 펴보지 않을까싶다. 그것으로 모든 식재료를 제 용도에 맞게 쓸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었으니 그만한 대접을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날카로움이 주는 섬뜩함도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 날카로움이 있기에 다른 재료들을 예쁘게 다듬어주지 않았을까. 터부시 하던 것에 대한 반전이 일어난다. 모든 것은 각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그 역할을 제대로 잘해냈을 때 그것이 빛나는 것은 말해 무엇 할까. 주방도구 중에 사람들이 가장 애착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는 칼이 실은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바다. 그런 만큼 그것이 비록 유정물은 아니지만 제 존재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소중하게 다뤄볼 일이다. 아마 오늘 저녁에는 우리 집 주방에서 뚝딱뚝딱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분주할 것이다.


-2017년 11월 구미문예 공모전 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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