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생각의 꼬리를 자를 힘
나는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뿐이었다. 내 안에서는 그동안의 업무 스트레스로 마치 페트병에 든 콜라처럼 누군가가 맘껏 흔들어 분출하기 직전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예민한 것 같은, 한편 털털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말이 없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의식적으로 말을 하게 돼 또 말이 많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해 종잡을 수 없는 상태에 가끔 빠진다. 어제도 그랬다.
겸임학교에 출근해 먼저 출근한 OO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아무 말 안 하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커피 한잔 하라는 말씀에 따라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카페처럼 열린 교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휴양지처럼 테이블과 파라솔과 하얀 의자가 있는 아침은 천국에 온 느낌이었다. 게다가 바로 앞은 사철나무와 소나무, 에메랄드그린과 비슷한 녹색 수목이 소담하게 어울리는 광경에 소리 없는 환호성이 울렸다.
오직 공문서와 해야 할 업무가 숙제처럼 맴도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문을 열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은 천국이 따로 없겠기에 OO선생님이 쉬엄쉬엄 하라고 배려해 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천국이 따로 없는데요!"라고 외쳤다. 믹스커피 한잔을 들고 잠시 잠깐 아침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이런 시간과 기회를 단 오 분이라도 가질 수 있어서 기뻤다. 어쩌면 아침의 풍경이 격무로 시달린 내게 작은 선물을 준비한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의 보상을 받는 듯해서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직장에 일하러 왔건만 난 잠시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잠시 티타임만 가지고 끝냈으면 좋으련만 왜 그 밖으로 다시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에 이끌리듯 나는 문 밖이 궁금했다. 여느 교무실과 구조가 다른 데다 작은 학교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만 같았다. 또한 OO선생님의 "쉬엄쉬엄 하세요."라는 말씀이 포괄하는 의미를 너무 직역만 한 내 탓도 있었다. 내 책상에 앉아 업무포털에 접속하고 메신저를 읽고 저장 문서를 확인하다가 그러다가 다시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빛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마침 하얀 의자에는 직원분이 앉아있었다.
나도 바로 의자에 앉았고 뒤이어 다른 분이 또 함께 했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안에서 마구 뒤섞여 요동치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동료에 대한 험담이나 마찬가지인 일화를 끄집어냈다. 도구에 몰꼬 트듯 한 번 쏟아진 내 말은 마구 분출돼 나왔다. 이야기의 늪에 빠진 나는 중간에 끊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고 잠시 직장이라는 현실을 잊은 채 넋두리 같은 사연을 속사포처럼 털어놓은 것이다. 잠시 후 OO선생님이 나오셔서 주변을 맴도시기에 그때서야 현실로 돌아와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자마자 밀려오는 후회. 어쩌면 내 습성일지도 버릇일지도 모를 말의 홍수에 내가 빠진 것처럼 경솔했다는 생각이 구름처럼 내 머리 위를 덮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그 생각과 말의 꼬리를 적절한 시기에 자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으로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했다.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 어쩌면 모든 문제는 나 자신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감정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 그것이 계속 안에서만 머물러 독이 되고 썩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실타래 엮듯 끄집어내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디 누구인들 할 말이 없을까. 다만 자기 안에서 스스로 거를 것은 거르고 자를 것은 잘라낸 후 정제해 말로 표현할 때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가끔 불순물을 여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로 뱉어내는 사람을 볼 때면 나도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는데 어쩌면 나도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이 완전하지 않으니 나도 그럴 수 있다는 논리로 넘기기에는 스스로에게 아주 찜찜함이 남는 하루였다. 나는 잔뜩 감정이 팽창한 상태에서 뚜껑을 열다가 뿜어져 나온 탄산으로 인해 뚜껑이 닫히고 잔여물만 지저분하게 남은 상태의 콜라병이 되었다. 대화를 통해 사람과 친해지기도 하지만 잘못된 대화는 사람과의 단절을 부를 수도 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퍼 담을 수 없듯, 뱉은 말도 역시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말이든 글이든 그렇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날이었다. 말이든 생각이든 그때그때 즉시 자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