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

13. 연화지 벚꽃길 거닐다

by 글마루

김천시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모처럼 전화가 와 3주 전 약속을 하고 상주 면 단위에 사는 친구를 태워 김천으로 향했다. 요즘 과로해서인지 자면서도 머리가 아팠는데 그 두통 때문에 잠이 깼다. 몸살기운도 있어서 약속을 미룰까 하다가 친정엄마께 드릴 생선 산 거와 소고깃국 끓인 것을 전달해야 하기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섰다. 내비게이션의 아주 친절한 안내로 차는 가까운 추풍령을 경유해야 함에도 황간으로 한참을 둘러갔다.


비가 간간이 오는 데도 연화지 주변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김천 입구에서 함박웃음을 머금은 벚꽃길을 달리노라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도시보다 조경이 잘되어 있다는 친구의 말대로 거리 곳곳은 벚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돼 차를 달리는 내내 꽃과 함께 했다. 벚꽃 구경하러 나온 행락객이 많은지라 식당은 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들로 꽉 찼다. 연화지 주변 식당이나 카페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다. 우리는 조금 조용한 연화지 위쪽 홍차카페로 향했다.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아름답게 색칠하는 연화지의 풍경


처음 보는 꽃인데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년에 친구들 다섯 명이 만났던 카페는 주인의 정갈한 성격 덕분에 진귀한 찻잔과 풍성한 꽃들로 인해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곳에서는 목소리도 조분조분해야 할 것 같고 차를 마시면서도 소리 내지 않고 교양 있게 마셔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든다. 일반 카페처럼 왁자지껄 떠들기보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해야 어울리는 그곳에서 우린 평소보다는 조용히 대화를 했다.

아름다운 찻잔에 차를 마시니 잠시 귀부인이 된 듯 착각이 듦.
테이블에 놓인 사람을 유혹할 듯 강렬한 붉음의 아네모네


그러다가 키가 자그마하고 통통한 볼이 매력인 친구가 당뇨로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는데 너무 웃겨서 우린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듣는 우리는 너무 웃겼지만 정작 당사자인 친구는 하얀 옷 입은 선생님(주치의)의 말씀에 심각했노라고 한다.


하얀 옷 입은 선생님: 뭐 먹었어요?
친구: 아무것도 특별히 먹은 게 없는데요.
하얀 옷 입은 선생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피가 이렇게 걸쭉하면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고, 남자랑 손도 안 잡았는데 애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젊은 나이에 똥오줌 받아낼 상황이 생기면 우짜려고 말을 안 들어요? 밥 반 공기, 두부, 달걀, 채소, 수육 같은 음식으로 간을 싱겁게 해서 먹고 밀가루와 튀긴 건 안 된다고 했지요?
친구: 예......


그런데 친정엄마와 같이 당뇨를 앓고 있는 친구와 엄마는 병원을 나서자마자


"뭐 먹으러 갈까? 치킨 먹을까?"


했다는 말에 우리는 식단 관리 잘하라는 충고를 했다. 그러자 친구는


"밀가루, 튀긴 것 말고 먹을 게 뭐가 있노?"


라며 마치 남의 말하듯이 하기에 우린 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만나면 늘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리를 웃겨주는 친구 덕분에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노는 날은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 같다고 오후 네 시가 넘어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호수처럼 잔잔한 이미지의 친구가 헤어지기 전 한 말이 나를 감동시켰다.


"우리 해마다 벚꽃 필 때면 무조건 만나는 거야."



친구의 말 한 마디는 연분홍 벚꽃처럼 설렘을 안긴다. 컨디션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만나 꽃 구경하며 수다를 떨다 보니 아픈 게 한결 덜한 것 같다. 또한 만나자고 불러줄 때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야 한다. 오며 가며 꽃구경을 실컷 한 비 오는 날에 우린 감성만큼은 여고생이 되는 소중한 추억을 한 작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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