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조 타일
이 도끼다시를 누가 쓸까?
인테리어 바닥재 품평회를 진행 중에 테라조 타일 앞에서 발길을 멈춘 부장님께서 대뜸 그 제품 앞에서 한마디를 던지신다.
도끼다시라 함은 도기다시의 비표준어로 돌 따위를 갈고닦아서 윤을 내고 무늬를 내는 것이라 정의된다. 예전 우리 학교나 관공서 바닥에 주로 많이 보이는 바닥재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내구성이 좋고 가성비 좋은 바닥재로 여겨져 공공기관에 많이 쓰였었다. 학교 복도 바닥에서 주로 보던 자재이다.
도끼다시라는 잘못 표현된 이 석종은 테라조이다.
부장님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젊은이들 사이에선 테라조는 굉장히 유니크하고 힙하다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품평을 통과하여 제품 출시를 하게 되었다.
주로 오래됨과 낡음 그리고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공간의 상징화되어있던 테라조 타일의 변화는 누가 주도했을까, 을지로의 뒷골목을 가본 적이 있다면, 이런 테라조 타일의 유행은 자연스럽게 20대들에게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게 받아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을지로가 30-40대들에게는 그저 지나왔던 옛것들의 추억으로 여겨지는 장소라면, 20대 들에게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홍콩 누아르 영화 촬영 장소 같은 이국성을 느끼는 곳이라고 한다.
옛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인테리어 자재로만 활용되던 테라조는 최근에 모던함을 입은 새로운 느낌의 컬러 테라조가 공간 전체 스타일링을 담당하거나 바닥 , 벽, 소품 등에 속속 등장한다. 이 빈티지한 녀석의 변신은 굉장히 과감하고 에너지 넘치는 시각적 플레이가 더해져 공간의 자양강장제로써의 역할을 한다.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꽉 채워주는 이 조각들의 색다른 해석은 design miami/ basel 2015 전시에서 Max Lamb라는 디자이너의 ‘marmoreal'의 제품에 의해 확고해졌다. 작은 대리석 칩들이 조악하게 모여서 마치 튀기라도 할까 봐 숨죽여있던 기존 테라조들에 비해 2015년 등장했던 이 과감한 테라조 타일은 컬러뿐만 아니라, 칩들의 크기들 또한 서로 다르게 표현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기죽어있던 이 녀석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켜고 덕지덕지 자기 영역을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과감하게 힘을 실게 된 계기가 있을까?
고급스러움과 호화로움이 뒤범벅되어 문턱조차 넘기기 힘든 공간이 있다. 명품 매장이다.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들어갈 때면 유난히 밝은 조도와 면장갑을 끼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직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너 돈 얼마 있어?라고 묻는 것 같아 구경을 함부로 못하게 될 때가 많다.
꼭 사야 할 일이 있다거나 목적성이 없다면, 굳이 그 공간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런 무드 조성은 비단 직원들의 웃음과 면장갑 때문은 아니다. 공간이 주는 위화감에 있다.
번쩍이는 대리석의 올 스타일링은 반짝이다 못해 미끄러질 만큼 윤광이 항시 유지되어,
얼굴에 고른 영양 섭취함이 묻어나고 잘 차려입고 준비된 사람만 들어오라는 듯 무언의 호객 행위를 한다. 무게감으로 압도해버리는 블랙 컬러 바디에 화이트의 거대한 갈라진듯한 무늬 석종인 씨 마퀴나 스타일이나, 새하얀 컬러에 그레이 흐름이 곳곳에 보이는 비앙코 까라라 스타일은 마치 이탈리아 고급 귀족의 별장이나 성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상을 벗어나고자 함은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인 것처럼 마치 브랜드 매장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매장 밖 세상과 다른 곳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공간을 만드려다 보니, 고급자재 활용과 천정고가 높아지는 것이 이유인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의문과 재기 발랄함을 던진 이가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이다.
그는 영국 출신 건축가로 지적이면서도 절제미가 담긴 건축적 성향으로 유명하다.
2015년에 문을 연 발렌티노 프레그쉽 매장 설계를 데이비드 치퍼필드에 의해 주도되었다.
매장의 콘셉트로는 기존 스토어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쇼룸 대신 새로운 건축 양식을 홍보하면서
새로운 것과 옛것의 조합을 중시하며 Palazzo(궁전풍의 저택) 분위기를 내는 것이라 했다. 팔라디 아나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얻어 조각난 대리석들이 서로 모양에 맞추어 쌓인듯한 테라조 타일의 사용되었다.
*팔라디아나: 돌을 켜켜이 쌓아 성의 외곽을 쌓는 방식
새로움과 지나온 것들의 절묘한 조합은 영리하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제한적으로 표현된 컬러와 형태들로 제품이 더 돋보일 뿐 아니라, 실험적인 자재로의 뒤덮음은 건축가의 자신감 때문인지 들어서는 순간 우쭐해지는 느낌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 오래된 것을 버리고
올드하다 느껴지는 것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버려왔었다.
자기다움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선
지 나온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헤리티지가 필요하진 않을까?
국내에서도 꾸준히 인기 있는 테라조 타일이
역사성에 대한 소중함과 새롭게 보려는 시도가 맞물려
레트로 열풍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생각보다 의미 있게 느껴진다.
나의 못난 과거들도 버리지 않고 새롭게 바라본다면 과연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