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센추리모던
한 달에 용돈이 20만 원이었던, 대학생 시절, 사치스럽게도 연애를 했더랬다.
커플통장, 커플 요금제의 그 시대의 최신의 시스템을 동원해서 미니멀한 데이트를 계획했었고,
공원을 걷다 너무 지치거나, 비가 올 때면 서울시내버스를 타고 강제 드라이빙을 했었다.
데이트 자금을 만들기 위해 홍대 앞 프리마켓에서 직접 그린 그림과 노트 등을 팔며 데이트 비용을 만들다 만난 외국인과 펜팔 한 에피소드까지 이야기하다 보면, 어찌 보면 아름답고 순수한 대학생의 풋풋한 연애 이야기 같다.
하지만 매일같이 먹는 분식집에서 남자친구 앞이라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흥건히 적셔 먹어야 제 맛 이거늘 너무 탐욕스러워 보이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원하는 대로 못 먹는 답답함이 이상하게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혹여나 친한 친구가 남자 친구와 파스타라도 먹고 온 다음날이면 괜스레 퉁퉁 대기 일쑤인 그냥 못난 여자 친구의 일상이 반복될 뿐이었다.
만나면 좋지만 언젠가부터 만나면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너무 스트레스받고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별을 맞이했고,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분명히 그 당시에는 지긋지긋한 마음이 컸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서울시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닌 덕에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경로가 아닌 서울 구석구석을 알게 되었고, 날 좋을 때면 부지런히 도시락을 싸는 새로운 경험도 해보았고, 각 브랜드 김밥집마다 시그니처 메뉴를 알게 되었다. 또한 공원 하이킹 덕에 다이어트한다고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됐었다.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에겐 대단한 능력을 키워준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패기 넘쳤던 시절, 이 젊은 열정이 영원할 것만 같아서 자만과 자신감을 구분도 못한 채 행했던 일, 당시엔 주접스러운 일 들이라도 지나고 보니 좋은 경험이었다 라는 말로 아름답게 포장해버리는 노련한 능력
우리에겐 왜 그때의 찌질함은 휘발되고 풍성한 추억 한 조각으로 둔갑하는 것일까.
경제 저성장 시기가 길어질수록 주목받는 디자인이나 쇼핑 패턴을 보면 맥을 같이 하는데,
힘든 시기이기에 당연히 경제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풍요로웠던 때를 그리워하며 찬미하기 마련이다. 인테리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1950년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유럽 전역은 오랜 전쟁 탓에 물자와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제품을 만들 때 디자인을 통해 창의적으로 밖에 해결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구에 주로 쓰이지 않던 소재의 활용이 대담해졌다. 어니스트 레이스는 의자 만들 소재가 부족하여 그동안 사용해 본 적 없는 강철로 의자 다리를 제작하였고, 젠스리솜은 버려진 나일론 벨트를 활용해 의자 커버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자원의 결핍으로 창의적인 가구 디자인 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풍요로운 디자인 스타일이 가능해졌다. 결핍은 풍요와의 대립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로 발현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1950년대에서 60년대의 디자인의 황금기로 불리는 미드센추리모던 스타일은 인테리어 시장에서 두각이 뚜렷이 나타난다. 결핍이 불러온 다양한 소재 믹스 가구와, 과감하게 표현된 생동감 넘치는 컬러들의 조합은 전쟁 후의 우울함을 달래기라도 하듯 디자인 시장을 풍요롭게 장식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제품들을 보면 풍요로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지 않는가!
미드센추리모던 가구의 대표되는 가죽소재 체어는오랜 시간 서늘한 햇볕에 노출된듯한 오렌지 브라운 컬러의 체어는 가죽 소재의 고급감에 태닝 되는 느낌이 더해져 시간의 영속성이 제품의 가치를 더해준다.
체리목의 가구의 채도 높은 마감재, 포근한 소재에 둥근 곡선의 마감 의자, 반짝이는 유광 소재의 바닥. 한 공간이라 느껴지기 힘들 만큼 다양한 광도와 소재감의 현란함 속에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없어도 화려하다. 드러내지 않은 꽉 채워진 카리스마의 모습. 그 뒤에 숨겨진 결핍의 요소들,
우리가 바라보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화려한 것들의 이면을 보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이는 단면에만 주목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 보게 된다.
지금 나의 부족한 글쓰기 실력에 나의 채찍질이 더해져 멋진 경주마의 대열에 우뚝 서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