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
대체 너는 어쩜 그리 나무토막 같으냐,
학창 시절 아빠가 귤을 사 오건, 바비의 집을 사 오건 한결같이 심드렁한 내게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셨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나무토막은 무미건조한 내 태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 마치 외모적으로도 굴곡 없는 통자 나무 같단 말로 들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소재가 있다. 예상했겠지만 나무이다.
우드의 겉껍질은 대부분이 거칠고 표면가공이 쉽지 않아 인테리어 자재로는 쓰임이 어렵기 때문에
나무 안쪽면의 세로 결에 따라 잘라서 활용하는데 그 면면이 수종마다 너무나도 다름이 확실했다.
사실 처음 우드를 접했을 때, 컬러로만 우드를 구별하나 싶었는데,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우드 수종에 따라 그 안의 표정과 컬러가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고 많이 놀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드를 실생활에서 만지고 느껴본 건 나무젓가락 외에 뭐가 있었을까 싶다.
옹이 패턴의 크기와 벌어짐의 정도는 나무의 성장 배경을 알 수 있었다. 겉모습으로는 가늠이 안 되는 그들의 삶이 속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후의 변화가 뚜렷한 지역에서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뚜렷이 나타나며, 실제 세로로 목재를 켜었을 때도 나뭇결이 선명하게 보임이 강하다. 오크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참나무와 월넛의 영문명칭으로 더 알려진 호두나무가 대표적인데 불규칙적인 결과
옹이 무늬가 크고 대담하게 보인다. 인테리어 내장재로 많이 선호하며 적당한 리듬감의 패턴이 보이는 목재이다. 반면에 기후의 변화 없이 같은 기후에서 자라는 나무의 경우엔 나이테가 없어 세로로 잘랐을 때도 뚜렷한 라인은 보이지 않고 골고루 퍼진 물관과 섬유질만 뭉근하게 보인다. 주로 목재의 결이 곧고 균일하며 내구성이 뛰어나 고급 목재로 취급되며, 결과 바디 색감 차가 거의 없어 멀리서 보면 단색의 표면으로 보이는 이 수종은 주로 티크, 부빙가, 흑단 등의 특이 수종 등이 있다.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행동가짐과 마음가짐 이 달라진다. 절제되고 정리가 깔끔한 공간을 만나면 본인도 모르게 손을 모으고 발도 가지런히 걷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반면에 리드미컬한 공간을 만나면 목소리도 좀 커지고 자유롭게 걷게 되며, 생각 없이 내뱉은 자신의 유머감각에 놀라기도 하는 것이다.
환경의 중요성이다. 나무조차도 살아온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누구보다도 환경에 민감하고 예민하다. 공간을 스타일링하고 구성함에 있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지, 자주 오고 싶게 되는 공간일지, 오래 머무르고 싶은 온기가 있는 공간인지 꾸준히 살피고 수시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잇는 것이다.
주로 우드 스타일링이 이뤄진 공간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고도 표현하고 안락하다고도 말한다.
콘크리트나 세라믹 소재에 비해서도 확연하게 그 차이가 드러난다.
베이지 브라운 컬러에서 오는 안락함은 안정감을 주는 컬러뿐 아니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온도 또한 체온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 아닐까, 이렇게도 포근한 무드의 나무 소재가 나무토막이라는 단어로 바뀌은 순간 분위기는 역전된다.
온기보다는 냉기가, 유연한 나이테가 아닌, 융통성 없고 둔탁한 나무의 단단함이, 마감재로써 최고의 소재가 아닌 용도가 불분명해 어디 하나 쓸모없는 오브제로 표현된다.
나무토막 같던 내 학창 시절을 뒤돌아보면, 맏이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과 애교를 부리거나 칭얼대는 행동은
치기 어린 모습이라 여기던 내가 항상 단단한 모습으로 중무장했었다.
그때의 나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며칠 전 회사 동료 또한 비슷한 말로 맥을 같이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남들의 감정을 면밀하게 바라보고 대응하다 보니 자기 자신의 감정엔 둔해졌다고 했다. 그 말이 그때의 나를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생기 없고 표현에는 묵직했던 그때의 나는 좀 더 유들유들해지기로 마음먹었던 게, 아마도 그때의 아빠의 나무토막 사건으로 시작된 듯싶다.
그때 이후로는 나무토막이 아닌 야들야들하고 무게감 없는 콩나물로써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냥 쑥쑥 자라서 무침이건 국이건 조림이건 어디든 유연하게 들어가서 그 몫을 해내고야 마는, 그리고 좀 힘들고 지칠 때엔 검은 천을 덮어놓고 잠깐 동굴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한층 더 커져있는 그런 유연하고, 생기 넘치는 그리고 회복력도 빠른 그런 모습들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때의 내가 갖지 못한 모습들에 대한 동경이었던 듯싶다.
나무의 쓰임은 정말 다양하다. 쓰임에 따라 가공법과 보관법이 모두 다른데, 가공을 하고 남은 부분은 토막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토막은 본인의 쓰임을 모른 채 덩그러니 있다 보면 버려지거나 방치될 경우가 높아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무토막 같다는 말은 너의 쓰임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거니?라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싶다.
정말 다행히도 그때 이후로 나무토막 같다은 소리는 안 듣고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