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signBackstage Jun 05. 2024

나는 무엇을 즐기는가!

<인문일반> 아비투스

SNS에 '나라별 중산층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4개 국가의 중산층 기준에 대해 소개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가지고 있고 월급 500만원 이상 받는 이들이라 여겼다. 경제적인 자본의 크기가 중산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이 말하는 중산층 기준은 외국어를 하나정도 할 수 있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다룰 줄 아는 악기,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했다. 문화적 역량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했다. 영국과 미국 학계에서 말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명확한 자기주장을 갖고 있으며, 약자를 돕고 페어 플레이 하는 이들이라 했다. 이 두나라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가! 얼마나 정의로운가에 대한 기준이 중산층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물론 조사하는 대상과 이를 선정하는 기관이 동일하지 않아서 명확히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리적 환경과 사회규제등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예시로 자주 언급되는 유럽을 생각하면 나는 구시가지에 깔려 있는 돌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서있는 것을 좋아한다. 중세시대부터 깔린 그 길을 걷다 보면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잘 보존된 문화유산과 건축 양식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요즘은 높은 커피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지만 20년 전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 카페문화도 굉장히 생경했는데 테라스에서 여유 있게 커피를 즐기는 유럽인들을 보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때 나는 주로 잠을 깨는 목적으로 자판기 커피를 마셨었다. 커피 향도 원산지도 모를뿐더러 얼마나 달고 우유 맛이 나는 가가 커피선택의 기준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 전혀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유럽인 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 그들의 태도와 예술 건축 전공자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지원이 부러웠다. (국제학생증을 통해 미술 전공자라는 게 확인되면 프랑스 유명 아트뮤지엄과 미술관을 무료입장이 가능했었다. 지금은 제한적이라고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르네상스의 수많은 작품들을 가까이 접하고 느꼈을 그들은 얼마나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까? 위압감으로 유럽에 대한 높은 장벽이 생기기도 했었다.


 ‘아비투스’ 책을 읽으며 오래전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때의 들쑥날쑥했던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 책은 모든 것을 갖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아비투스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다. 아비투스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을 뜻한다.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컬으며 이를 8가지의 자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심리자본, 인생을 무엇으로 즐기는가를 문화자본,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지식자본, 얼마나 가졌는가를 경제자본, 어떻게 입고 걷고 관리하는가를 신체 자본, 어떻게 말하는가를 언어자본, 누구와 어울리는가를 사회자본으로 나뉘어 설명한다.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얻기 어려운 건 문화자본이라고 한다. 문화자본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기에 뒤늦게 쌓으려는 이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영역이라고 한다. 이는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는가 로 설명할 수 있다. 안목을 가진 이들은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뛰어넘어 서로를 만나게 한다. 문화자본은 부드러운 캐시미어 스웨터와 맞춤정장, 담장 높은 고급스러운 저택 등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냄으로써 공고해 진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오바마는 백악관에서 채소를 키우며 슬로 푸드 운동에 힘썼으며, 영국의 왕세자빈 케이트 미들턴은 대중들이 많이 입는 중 저가 브랜드인 자라 패션을 즐겨 입는다.  이들은 화려한 외관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식습관 개선의 중요성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본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에 투자하고 있었다. 아는 후배는 요리에 다양한 지식이 많아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 음식에 맞는 그릇을 구매하고, 인상 깊게 먹은 음식을 집에서 그대로 구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결국에는 성공한다. 패션에 진심인 또 다른 후배는 옷에 어울리는 양말을 선택하는데 많은 시간을 기울인다고 한다.


문화자본을 쌓는다는 건 르네상스 작품을 어릴 때부터 감상하고 브람스 음악을 들으며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를 구별해 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파악하고 이를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문화자본을 쌓는 일 이었던 것이다.


 나의 안목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다양한 것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알아야 한다는 착각으로 고민하고 분주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장 잘 알기 위해선 내가 어떤 것을 즐길 때 가장 나 다운가에 있다. 편향된 독서를 하는 건 사실 나의 안목을 높이는 일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만 감상했던 건 나의 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좋아하는 삶의 격을 높이기 위해서 타인과 구별 지을 수 있는 나만의 아비투스는 무엇일까?


[ 디자이너가 바라본 cover design ]

표지를 꽉 채운 사각 프레임안에 장식적인 요소들로 화려하게 표현 되어있다. 이 책을 탠 브라운 컬러의 가죽소재로 바꾼 뒤 책제목 대신 십자가를 넣으면 마치 성경책으로 보일만큼 경외감을 주는 디자인이다.


 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이 가진 자본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은 그들 삶을 동경하는 이들에게는 바이블로 여겨질 수 도 있겠다. 대칭을 이루고 잇는 이 구조는 규칙적으로 질서 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계급사회를 표현하는 듯한 피라미드 형태의 선과 양쪽으로 뻗어진 금색 라인이 보인다. 그 안에 작게 새겨진 중세시대 쓰이던 문장 엠블렘은 마치 작은 십자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제목에 쓰인 세리프 폰트는 보그체와 유사해 보이는데 화면을 꽉 차게 배열한 것 또한 비슷하다. 패션잡지 중 가장 대표적이며 영향력 있는 보그 잡지는 워낙 작가 정신이 강조된 오트쿠튀르 옷이 많이 소개된다.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패션을 소개하지만 많은 패션피플들에게 사랑을 받는 매거진이다. 아비투스 또한 일상에 적용하기 힘든 그들 만의 리그를 소개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각자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적당한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