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서 찾은 노력 <게미와 베짱이>
정오가 다 된 시간에 이불을 둘둘 말고 뒤척이다 일어나 좋아하는 피아노 곡을 들으며 커피 한잔을 한다.
게으른 사람일까? 여유로운 사람일까?
게으르다는 말과 여유롭다는 건 어떻게 다를까? 게으르다는 말은 부정적이고 여유롭다는 말은 긍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면 착하고 게으르고 느린 것은 나쁘다는 공식 속에 살아왔다. '부지런한 범재가 게으른 천재보다 낫다'는 속담을 들으며 '네가 잘 못하는 건 노력하지 않아서야'라는 압박 속에 커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학생 때는 좋아하지 않는 과목도 잘하기 위해 애썼고, 회사에서는 상사의 불편한 말에도 억지웃음을 지었다. 부모가 되면 아이와 가정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학습되어 온 우리 사회의 외압이다. 한두 가지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빠지는 거 없이 두루두루 잘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사회에서 게으름은 곧 도태된 삶을 뜻했다.
빨리빨리 문화와 빠른 서비스는 어느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많은 외국인들은 빠른 인터넷과 배달서비스, 교통 시스템들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근면 성실함이라는 국민성을 등에 업고 노력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어느새 세계 기술 경쟁력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잘 기술경쟁력이 높은 나라에 산다는 건 그동안 얼마나 쉼 없이 달려왔는가에 대한 성적표였다.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선과 악으로 나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릴 때 읽은 "개미와 베짱이"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동화 속 개미는 미래를 대비해 계획적인 삶을 꾸리고 베짱이는 큰 계획 없이 지내는 게으른 삶을 살아간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끝이 났던 이 책을 좀 다르게 읽게 됐다. 어른이 되고 다시 읽어본 이 책에서 베짱이는 게으르게 그냥 놀고만 있지 않았다. 개미들이 일할 때 흥겨운 연주와 노래로 더운 여름 즐거운 노동요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베짱이가 가진 대단한 장점들이 보였다. 게으름을 피운다며 타박하는 개미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를 묵묵히 하는 성실성과 아무리 힘들고 초라한 상태에서도 개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높은 자존감이 있었다.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일해 본사람들은 안다.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하며 개미처럼 사는 것보다 베짱이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전문성을 키우는 것. 그리고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베짱이처럼 살아가려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가로이 집중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19세기 파리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모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화려한 궁정 문화, 자율적인 창작활동이 가능한 사회구조,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 활동들도 있었겠지만 주변의 아름다음을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이 다양한 창작활동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플라뇌르는 ‘한가롭게 배회하는 산책자’를 의미의 프랑스어로 19세기 처음 등장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도시의 곳곳을 자유롭게 걸으며 도시를 즐기는 이들을 가리킨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보들레르는 플라뇌르를 '열정적인 구경꾼'이라 정의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산책이라는 일상적인 활동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탐색하고 찾아내는 이들이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탐색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19세기 그들의 모습은 지금의 파리지엥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파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도시’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그들이 카페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은 파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떠오른다. 그들은 19세기 르네상스를 경험하며 느슨함의 힘을 알고 있었다. 남들이 가는 길을 쫓아가는 것보다 내가 찾은 작은 반짝임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부지런히 살아오며 많은 발전을 이룬 우리로서는 경험해보지 않은 게으름이 가끔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부지런함도 불안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되는데 그러기 위해 지속적으로 나를 탐색하며 아름다움을 찾는 창의적인 게으름이 필요하다. 조금 늦더라도 불안해하지 말고 주변을 잘 관찰해 보자.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을 때 부지런함으로 상태전환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확신이 생기는 순간 전속력을 향해 달리고 의심이 들 때는 다시 점검하고 탐색하면 된다.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상태를 전환시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왜?
창의적인 게으름이 필요한 순간이니까
그리고 우린 그걸 여유로움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