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우주에게,

먼지 엄마, 우주 아들

by DesignBackstage


. ‘엄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OO고등학교 앞이야!’


유난히 바람이 차갑던 날 저녁, 집에서 3킬로가 넘는 곳에서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투하나만 걸치고 부랴부랴 데리러 간 그곳에 벌벌 떨며 하얗게 질려 있는 아이 모습이 보였다. 학원 하원차를 타고 오다가 집이 보여 내렸는데 여기였다고 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주거 밀집지역으로 같은 브랜드 아파트가 동네에 4개가 넘었다. 대형아파트가 많이 없던 동네에 살다 보니 아파트 브랜드만 보고 부랴부랴 내렸던 것이다. “어린애도 아니고 잘 찾아올 수 있어요!” 호기롭게 나간 아이가 몇 시간 뒤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돌아왔다. ‘괜히 이사 온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추위를 달랠 수 있게 급하게 국을 데웠다. 다음날 첫 등교를 앞둔 첫째는 일찍 잠들었다. 긴장이 됐는지 한참을 뒤척였는데, 나도 아이가 깰까 숨죽이고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전학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이직해 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설렘과 두려움 그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때가 떠올랐다.


전학이 결정되자 3살 터울의 두 형제의 반응은 비슷한 듯 달랐다.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들들 모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모두 아쉬워했다. 첫째는 새로운 학교 운동장 크기, 한 학급당 학생수와 급식 수준에 대해 빠르게 검색했다 ‘방에 턱걸이 운동기구가 들어갈 자리를 확보해 달라’ ‘욕실에 비데와 욕조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근처 헬스장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며 요구사항도 많았다. 등교도 삼십 분 전에 하더니 첫 하굣길에 회장선거 연설문을 생각하고 돌아왔다. 첫째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긍정적인 주변의 시선을 동력으로 큰 힘을 얻는 아이다. 뭐든 빨리 끝내려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다 보니 실수가 잦고 덤벙대지만 추진력이 높은 아이로 자랐다.


둘째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기 싫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다 잠들었다. 형이 등교하고 나서 힘들게 일어난 아이가 혹여나 학교를 안 간다고 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며 지켜봤다. 양치, 세수를 하고 머리에 물을 묻혀 툭툭 털고는 등교준비를 마쳤다. 가방을 메고 가는 뒷모습이 축 쳐져 보였다. 파이팅 외치려다 역효과가 날 것 같아 혼자서 주먹을 힘껏 위로 들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하교를 하고 돌아온 아이의 재킷에는 푸른 인조잔디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아이들과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졌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친구들이 농구하자고 했는데,
농구보다 달리기 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좋다고 해서 술래잡기를 했거든, 그러다 넘어졌어!"


그제야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려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둘째는 조용히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만 힘을 얻는 아이로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다 보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분명히 구분해서 주변을 설득할 줄 아는 아는 아이로 자랐다. '이렇게 가진 게 많은 아이들을 나는 어떤 잣대로 바라보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문제를 각자 다르게 풀어내는 아이들을 보며 괜히 마음 졸인 내가 작게 느껴졌다. 생각의 크기가 우주만큼 넓은 아이들 앞에서 먼지가 혼자 들썩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둘째는 딱 지각하지 않을 만큼 늦잠을 자고 머리를 툭툭 털고 집을 나선다. 첫째는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며 아이들이 자기를 못 알아보거나 어색해하면 어쩌냐며 고민을 한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우주에게 먼지가 답해주었다. ‘네가 안경을 꼈는지 렌즈를 꼈는지 아이들이 못 알아봐도 놀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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