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뛰어 들어온 설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노래를 들으며 예전 기억을 떠올려 본 적은 있지만, 향이나 냄새에 관한 추억은 그다지 없었다. 마들렌 빵에 홍차를 찍어 먹은 기억이 없어서 인 건지, 마들렌보다 겉이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휘낭시에를 더 좋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저 글이 인용될 때마다 갸우뚱했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오늘, 기어코 글은 밖에서 써야 잘 써진다며 옷을 잔뜩 껴입고 카페로 향했다. 자리가 없어 카페 문 근처에 자리 잡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매서운 바람이 들어왔지만 여기 말고는 자리가 없었다. 카페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머릿속으로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카페에서 오븐에서 빵을 굽는지, 갑자기 마늘빵 냄새가 예고 없이 날아온 어퍼컷처럼 코끝을 훅 치고 오래전 기억을 깨웠다.
나는 마늘빵 냄새와 함께 20여년 레스토랑 주방 앞에 앉았다.
두근거렸다.
대학교 재학시절 친구들과 연말을 앞둔 시점에 내 생일파티를 하려고 강남역 스파게티 집에 모였다. 누가 드레스 코드를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까만 코트에 정장 차림으로 한껏 꾸미고 나왔다. 누가 생일자인지 전혀 모르겠다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내게 친구는 빨간 생일 꼬깔모자를 흔들었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일로로도 항상 즐거웠다. 그날도 온통 새까만 서로의 옷을 보며 깔깔 웃었었다. 그리고 내 기억은 딱 여기까지였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을 만나기 전까지.
큰 키와 서글서글하게 웃는 미소로 다가온 직원은 까만색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흰 셔츠에 어깨엔 용도를 모르겠는 흰 수건을 걸치고 적당히 반항기 있는 듯한 말투로 주문을 받았다. 그 직원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주문을 어떻게 했는지, 뭘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히 기억하는 건 레스토랑을 나설 때 계산해 주는 직원에게 혹시 여기 아르바이트생이 필요 없냐는 질문을 했던 기억은 또렷했다. 그리고 나는 그 주 주말부터 그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됐다. 운명인 건지 운명이라고 믿고 싶었던 건지 우리 테이블에 주문받으러 왔던 직원 K가 내게 업무를 알려줬다. 나의 첫 업무는 식당 오픈전 주방 앞 테이블에 앉아, 바게트빵에 마늘과 녹인버터와 설탕등을 넣어 버무린 소스를 빵 위에 발라 놓는 일이었다.
내가 소스를 발라 K에게 주면 K는 주방 안에서 오븐에 빵을 굽는 일이었다. 어깨에 걸친 수건은 마늘빵을 굽고 오븐트레이를 꺼낼 때 쓰는 수건이었는데 트레이를 빼고 휙 하며 어깨에 툭 걸칠 때마다, 내 심장을 때리는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 소리가 혹여나 상대에게 들릴까봐 두려워 일에 집중했는데,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빵 한 쪽면에만 마늘 버터를 발랐었던 기억이 난다. 식당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불어오는 찬바람과 주방에서 날아오는 마늘빵 냄새는 나의 22살 겨울의 모든 기억이었다. 완전히 잊고 지냈었다. 마늘빵 냄새는 그동안 많이 맡아왔을 법도 한데, 2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떠올랐던 건 그 시절의 계절과 그 장소, 그리고 익숙한 향기가 다시 한번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20여 년 전 나는 강남역 카페에 앉아 마늘빵냄새를 맡는 겨울을 생각이나 했을까? 너무 추운 한기로 한껏 웅크렸던 오늘, 마늘빵 덕분에 추억 온기로 흠뻑 따뜻한 샤워를 한 기분이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있다면, 내겐 마늘빵이 있었다. 기억이란 마음의 깊은 서랍 속에서 언제든 불쑥 피어오르는 향기라는 걸 알게 되니 이제야 푸르스트의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을 먹으며 떠올렸던 그 장면들이 이해됐다.
뭐지? 프랑스 대표문학가와 공감대를 이룬 것 같은 이 짜릿함은?
나는 겨울방학 동안만 아르바이트를 했고, K는 그 뒤로도 한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졸업 후 항공사 승무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K에게 겨울의 마늘빵은 어떤 기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