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했지만, 퇴사하지 못했다.

by DesignBackstage

엄마 아빠와 같이 오랜만에 점심식사를 했다. 어버이날이기도 하고, 날씨도 좋고 그간 바빴던 일도 정리가 많이 돼서 기분 좋게 한우 오마카세집을 예약했다. 오래간만에 안부도 묻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유년시절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퇴사한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시댁에서 하는 유통업을 함께하며 회사를 다닐 때보다 시간적인 유연함이 있어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덕분에 이렇게 평일 점심시간에 엄마아빠와 식사가 가능했다. 평화롭던 식사자리에서 엄마는 해맑게 이런 말을 했다.


"며칠 전에 OO엄마가 너 뭐 하고 지내냐고 해서 아직도 네가 그 회사 다닌다고 말했어, 요즘 그 회사 엄청 잘 나가더라! 그 집 아들도 엄청 들어가고 싶어 한대!"


부드럽게 넘어가던 한우가 목에 탁 걸렸다.

대기업 다니는 딸을 엄마아빠는 항상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런 회사를 13년 만에 나왔다. 더 이상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은 사라지고, 틀에 박힌 프레임 안에서 더 이상 성장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배부른 고민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출퇴근길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출 퇴근길에 끄적이던 글들로 하루하루를 버텨냈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극도로 차 올랐던 순간들이었다. 때마침 시댁에서 하는 유통업의 온라인 사업을 진행해야 해야 하는데 네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말에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간단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담당업무만 잘 해내면 됐지만 여러 업무를 돌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리서치와 기획업무를 하던 내가 영업과 마케팅 회계 모든걸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현장에서 뛰어 다녀야 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숨 막히는 현실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역시 엄마는 너무 서운해하셨다. 큰 간판을 잃어버려서 서운하셨던 건지 시댁에 딸을 뺴았겼다고 느끼셨던 건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인 거 같기도 하다. 항상 나를 생각한다며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엄마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들릴 때가 많았다. 엄마 앞에서는 끄덕였지만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엄마를 만날 땐 불쏘시개가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소화기를 항상 들고 다녀야 했다. 이번 한우 소화기는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엄마의 말에 화상을 입게 되어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가족사업의 온라인 전환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되었다. 오프라인 사업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쳐내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가 큰 타격도 입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 다양한 판로를 찾고 있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못한다. 좋은 일만 이야기해도 그 안에 부스럼을 찾으려는 엄마는 나의 결정을 또 질타할게 뻔했다. 멀쩡한 회사를 왜 그만뒀냐며 핏대를 올리며 말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왜 아직도 회사를 다닌다고 말하는 거지? 엄마는 내가 부끄러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뭐 하는지 누군가 묻는 다면 회사명으로 간단하게 끝났을 대답이 좀 길어졌을 것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회사명을 말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야 했을 것이고, 왜 그만뒀는지 이야기해야 했을 것이다. 벌이는 어떤지도 물어봤을 테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불편할 수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필요도 없고, 나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엄마는 있는 그대로 나를 응원했을까? 내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하셨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단지 주변에서 하는 질문들이 귀찮아서 그렇게 대답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화상을 입을까 봐 왜 그렇게 대답했냐고 선뜻 묻지는 못했다.살다 보니 꼭 모든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믿고 싶은대로 믿음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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