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하는 것

포도젤리 같은 삶

by DesignBackstage
맞아, 넌 항상 조용히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


마흔이 넘어서야 엄마가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난 여태껏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좋아하는 줄 알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던 나의 모습이었는데, 엄마는 나를 그렇게 잘 알고 계셨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알려주는 순간 나는 초고속 공감 혹은 폭풍오열로 내가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몇 번 했었다.


고3 때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 이갈이 하는 잠버릇이 고약해져서 가족들 모두가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돌아가면서 내 이갈이 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주거나 혹은 거칠게 흔들어 깨우는 방법 등을 선택했지만 이 모든 방법이 일시적인 해결방안이었기에, 약관절 전문병원 및 유명 대학병원까지 갔어도, 특별한 차도가 없던 터에 스트레스 성 일수도 있으니, 정신과를 가보라는 제안을 받고 그렇게 처음으로 정신병원 상담을 가봤다.


생각보다 대단한 것을 묻지 않았다.

어릴 때 어떻게 지냈는지, 뭘 좋아하는지, 연애는 어떤지, 그냥 무심하게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툭툭 질문을 던져주셨다. 난 그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이어갔고, 때론 격양된 어조가 나오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시고는 지긋이 나를 보며 나지막이 말해주셨다.


동생들 앞에서 꼭 모범이 될 필요 없어요
그냥 수진 씨로 지내면 돼요


시선이 진료실 허공에 멍하니 매달려있었다.

"삼일 처방전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 다시 뵙기로 해요"라는 말에 후다닥 진료실을 나왔다.

2층에서 처방전을 들고 1층 약국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처방 전위로 후드득후드득 소리가 나서 "뭐야!"라는 생각아 뇌에 전달하기도 전에 주저앉아 무릎을 감쌌다.

갑자기 다리 힘이 풀린 건지, 예고 없이 흐르는 눈물의 양이 너무 많아 감출 자세가 필요한 건지, 청승맞게 정신과 병원 계단에서 이러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뇌 회로가 엉켜버렸다. 그냥 고개를 무릎에 파묻는 것 말고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내 감정에 좀 억울한 부분도 있다.

난 대단히 모범생으로 산적도, 동생들에게 솔선수범이 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동생들 앞에서 철없는 언니와 누나였다. 부모님들이 싫어할만한 행동들을 주기적으로 했었는데, 그 안에 내적 갈등이 있었나 보다. 동생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자아와, 내가 하고픈 걸 하고 말겠다는 두 가지를 붙들고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듯싶다.


그런데, 그래서 그게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대성통곡할 일이냐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그때로 돌아가 나를 바라보면 내가 힘들다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토닥여주는 누군가가 곁에 없었던 듯싶다.

나도 몰랐던 나의 무기력함과 반항심들의 원천은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내게 힘들지? 괜찮아, 너 지금도 너무 좋은걸?이라고 도닥여주는 나의 자기 대상이 그렇게 생겼던 날, 나는 날개를 달수 있었다. 정말 놀랍게도 이갈이 횟수와 강도도 현저히 줄었다.


며칠 전에 우연히 포도젤리를 먹게 된 일이 있었다. 거봉 모양처럼 진짜 포도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같이 동봉된 이쑤시개로 톡 포토 알을 터트리면 순식간에 껍질이 오그라들면서 탱글한 속살이 드러낸다. 대단한 노력도 시간도 필요 없이 예리하고 뾰족한 한 번의 터치에 무장해제되는 모습에 이상한 희열을 느꼈었다.


가장 나다운 나를 찾게 되는 계기는 나도 몰랐던 나의 숨은 모습들을 바라봐 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아녔을까,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조언을 구하는 행위는 나를 너무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과 함께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맘을 이해해주는 것은 오롯이 나 혼자이고 나를 걱정해두는 이가 있다면 그건 상황이 만든 사회적 예의의 틀 안에 갖춰진 교육된 배려라 굳게 믿고 있었다.


나다움은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했던 터라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내가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기조의 이 글은 쓰면서도 나를 굉장히 위축시킨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걸 유난히 싫어하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녔던 나였기에 씩씩함이라는 과대 포장지 속 내용물은 상대적으로 빈약해지고 있던 건 아닐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완전함을 다른 존재들의 도움으로 보완이 될 수 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혹은 나 혼자 해결하고 끌어안고 있다 보면 생각의 범위가 작아지고 함몰될 수 있겠구나.

그렇게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그 누구보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나를 햇빛으로 유인해주는 건

따스한 위로 의 말이었다.


나를 좀 더 나답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결국 나 혼자서 노력해서 될 수 없는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오지랖이 아닌 상황에 맞는 관심과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주체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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