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필요했던 각오

선택이 다행해지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자세

by DesignBackstage

불과 5-6년 전만 해도 연초가 되면 신년회 때 자주 외치는 구호가 있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충신의 각오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회사에서 위기에 처한 상황만 되면 임원분들이 앞장서서 외치던 구호로 기억된다.


회사일뿐만이 아니다 90년대 음악을 듣다 보면 사랑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의 가사들 또한 죽음이 숱하게 언급된다. "널 사랑해 눈을 감아도 단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하늘이여 내 모든 걸 가져가 (중략) 기다릴게 죽는 날까지" - Flower의 Endless Love 중-


회사도 사랑도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힘들 것 같은 그때의 모습들은 이제 좀처럼 보기 힘들다.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는 선택이 제한적이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혹은 취업, 졸업 후엔 취업, 취업 후엔 결혼, 결혼 후엔 출산과 부동산 구입, 직장에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눈치싸움. 대부분이 정해진 이 선택 지안에서 선택을 하고 죽을 각오를 해가며 정진해 나아감이 표본이 되고, 바름이 되고, 정도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삶이 심지어 안정적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 되기도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다는 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도 큰 변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가 아닌 재학 중에도 본인이 만든 게임과 콘텐츠, 아이템들을 실제 온라인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본인이 그린 그림은 NFT로 판매도 가능하다. 그뿐인가 요즘은 미취학 아동들도 본인들이 즐겁게 노는 영상을 편집하여 하나의 콘텐츠로 생산되며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나이, 교육 수준 따위는 지금 시장에서 주도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얼마나 남들과 다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시기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앞에서 사회적으로 관리하기 쉬운 적정 시기에 몇 가지의 선택 지안에서 움직이고 그 틀 안서 또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왔었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달리다 보니, '이게 내 길이 아닌가!' 라고 하기엔 내 젊음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움츠리게 되고 쉽게 용기 내지 못하게 돼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사고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도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본다.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주도적으로 내 삶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첫 번째 선택의 사례로는 고등학교 진로선택이었다.문과, 이과, 예체능을 선택해야 하는데 문학에 관심이 많아 문과에 관심이 많았지만, 미대를 가고 싶어 예체능을 선택했었다. 그렇게 미대 진학을 하고 졸업 후 디자인 관련업과 디자인 기획 강의 일을 하며 예술은 인문학에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모든 분야가 점철되어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그 어떤 학문도 경계가 딱 나누어지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깊이있게 다루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기술자 및 연구자로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기술, 연구직처럼 한 가지에 올인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다양하게 변화되고 깊이 있게 한 분야에 올인하다가 어느 순간 사양산업이 되기도 한다. 첨단기술의 도입으로 인공지능기술이 나보다 더 월등하게 일을 처리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할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건 나의 라이벌도, 경쟁업체도, 인공지능기술도 아닌 나를 의심하고 기존에 하던 것에 메어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마인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건축학 교수인 유현준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교도소와비슷한 구조의 학교는 관리와 감시를 위해 설계된 건축물로 마치 양계장 같은 구조에서 학생을 기르고나서, 학교를 졸업하고는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라 하면 날 수 있겠냐!" 라며 학교의 건축학적 구조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야한다 말했다. 양계장에서 자란 우리는 독수리처럼 날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실 예전에는 예전이라 함은 불과 10 여전 전이였던 듯싶다. 한 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멋져 보이고, 그런 길을 걷지 못하는 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생각이 다르다. 회사에서의 성공과 승진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이들은 인정 욕구에 대한 결핍이 대부분 크게 느껴질 정도로 조금은 안쓰럽다. 본인을 높이려 다른 이들을 깎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되었는 이들을 보다 보면, 저일 말고는 저들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라는 생각에 측은해 지기까지 한다.

최근 후배들을 보면서 업무 외에도 다양한 삶들을 사는 그들을 보며 멋진 삶의 표본으로 보인다.

본인들이 관심 있어하는 요리, 패션, 게임, 독서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단지 즐기는 것에 멈추지 않고 기록하며 데이터베이스를 쌓아가는 모습은 삶의 질을 높이고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죽은 후에 연인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들은 정말 애절하다. 아마도 이별 후의 아픔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만큼의 상처로 비유되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나 또한 그때의 그 애절한 가사와 리듬에 몸을 싣고 둥실둥실 떠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니, 요즘 들어 가끔 그때의 노래를 우연히 마주하다 보면 그때의 그 애절함은 그대로인데 가사가 너무 무겁고 극단적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할 순 없다. 그때도 지금도 모든 게 다를 뿐이다. 우리의 삶의 기준도 상황에 따라 변하고 또 다르게 평가된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내가 또 어떻게 바라보게 되고 변하게 될지.. 삶의 속도가 무섭기도 하지만 달라지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또 기다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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