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비범함이 되는 순간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는 나로선 사실 학창 시절 기억나는 장면이 몇 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나는 크게 사고 친 적 없고 선생님 말을 거스른 적 없는, 태도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그리 높지 않은 4 분단 기둥 뒤 그냥 누군가로 그려진다. 그러다 보니 기억에 남을만한 일도 주목받을 일도 없었다. 대학 입학 후 그날도 흐리멍덩하게 하루를 보내던 2학년 광고디자인 수업 날이었다.
좋아하는 과목이다 보니 과제를 하면서도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발표하는 것은 영 자신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항상 누군가 뒤에 숨고 나를 내세우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한마디로 자존감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어쩜 다른 친구들은 발표도 저렇게 잘하는지 부럽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제하는 게 어렵진 않았지만, 발표수업이라고 하면 그렇게 무섭고 떨렸다.
그때 당시 나는 스웨덴 출신 미국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 claes Oldenburg "작품에 큰 영감을 받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일상의 평범한 제품들을 신격화시키며 순수함을 이야기하는 아티스트였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을 보면서 평범한 나도 저렇게 주목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설레었던 기억 있다.
그날의 과제는 본인들이 하루 중에 사용하는 제품 하나를 광고해보라는 과제였다. 나는 매일 아침 마시는 우유를 광고하기로 마음먹고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건강함, 신선함, 갓 짜낸, 빠른 배달, 바로 마시는, 매일... 수많은 단어들 속에서 내가 뽑은 키워드를 연결시켜 뽑아낸 한 문장은 "갓 짜낸 우유를 바로 집 앞으로 배달"였다.
이를 시각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젖소를 배달시키는 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빨리 배달해주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중국집 배달원들이 생각났다. 철가방 속 탕수육은 언제나 따끈했고, 짜장면이 불지 않게 배달해주는 그 신속함은 캠퍼스에 늘 나와 함께 했었다. 자주 시켜먹던 메뉴가 떠올라서 인지 번뜩이며 지나간 이미지는 철가방이었다. 거기에 올덴버그 님의 작품과 연결되면서, 푸르른 초원 위에 철가방을 향해 젖소가 들어가는 이미지로 시각화 작업을 했다. 푸르른 초원 위에 젖소 한 마리가 너끈히 들어가는 철가방을 크게 오버사이징하여 그래픽 작업을 했었고, 이는 시각적인 임팩트를 주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시대 감성 을로 동물복지 이슈도 있을 테고 철가방보다는 쿠팡 맨이 신속함을 대변하겠지만 말이다.
"발표를 야무지게 잘하는데?"
과제 발표가 끝난 뒤 교수님이 내게 건넨 첫 한 미디였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피드백일 수 있으나, 난 20 평생 동안 반대되는 단어들을 주로 듣고 살았었다.
야무지다의 사전적 의미는 " 사람의 성질이나 행동, 생김새 따위가 빈틈이 없이 꽤 단단하고 굳세다."
빈틈이 너무 많아 흐물거리고 우유부단했던 그때의 나로서는 야무지다는 말은 나도 잘하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휘몰아치게 만들어준 강력한 메시지였다.
유난히 곱슬머리가 심하고 머리숱이 없으셨던 그때 나의 은사님은 꽁꽁 엉켜버린 내 삶의 실타래에 얽힌 부분을 풀어주셨다. 야무진 내 모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꽤 단단하고 굳세게 내 청사진을 그려보게 된 날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선배, 선배처럼 발표를 잘하고 싶어요!"라는 후배의 말을 들었을 때
그때의 내 모습이 생생히 기억이 났다.
어느새 정말 다행히도 나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의 간극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간격의 차가 벌어지지 않게 해 주는 건 할 수 있다는 불씨가 지펴진 어느 순간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수많은 시간을 지내오며 함께 했던 이들 중에는 삶의 긍정적인 요인도 부정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경력만큼이나 내가 만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나의 역할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동료 선후배뿐 아니라, 지도자의 역할과, 보호자의 역할,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디렉터로서의 역할 등등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기능들을 하고 있지만, 점차 누군가에게 영향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본다. 불씨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인가, 불씨를 꺼트리는 역할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으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이 비범함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이건 내가 좀 잘하는데?"라는 나에게 보내는 으쓱거림에서 시작하게 된다. 오늘은 어떤 으쓱거림을 보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