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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Aug 25. 2020

호텔로 퇴근하고 싶다.

화이트 침구

중요한 날이나 일정 있을 땐 대부분 블랙 코디를 한다. 무난함 때문도 있지만 신경 써야 하는 날 유난히 힘 조절을 못해서 다소 과한 스타일링한 것을 몇 번 경험해보니, 크게 실수하지 않는 나만의 공식이 되기도 한 것이다. 처음 해외 출장 간 그날을 잊지 못한다. 프로페셔널함으로 무장을 하고 인천공항에서

그날 허리를 가장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펴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면 나를 어렵지 않게 만났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가구 전시회 참관 목적이었지만, 마음가짐은

전 세계 인테리어 시장을 온몸으로 흡수해서 국내 시장을 발라 버려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다소 격양되게 글을 쓴 건 그때 그 마음이 훅 올라와서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팀장님께 보내는  출발 보고 메시지에도 물결 표시를 두 번 넣고, 기내식과 와인 한잔으로 텐션은 이미 최상 레벨이었다. 출발 전날 산 화이트 슬랙스에 레드와인을 쏟기 전까지 말이다.


그 뒤로 나는 화이트 컬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두려움이다. 순백의 천사, 청순함, 무난함, 순수함 등 긍정적인 단어들로 많이들 묘사하는 컬러이지만, 나는 두렵다. 때 탈까 봐 두렵고, 너무 흠집이 잘 보일까 두렵고, 아무 데나 무난히 그냥 성의 없이 쓰일까 두렵다.  화이트 얼룩진 팬츠는 그 뒤로 입을 수는 없었다. 그때 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화이트 팬츠는 입거나 사지 않을 것, 기내에서 마시는  레드와인은 원샷할 것. 화이트 팬츠는 포기하면서 와인을 포기하지 않는 내가 너무 우스웠지만, 그때 다부지게 작은 다짐을 하고 호텔로 이동을 했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날 반겨준 건 새하얀 화이트 침구였다. 근데 왜인지 두려움보다는 청결, 따스함, 기분 좋음, 마시멜로우 등 긍정적인 이미지와 키워드들이 떠올랐다.


같은 컬러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데에는 분명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속성과 일시성이라는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소유하고 잇는 것들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기에 잘 관리해야 하고 혹여나 상하거나 얼룩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두려움까지 번지게 돈 것이었다. 하지만 호텔의 경우 때가 타거나 조금 지저분해지더라도, 혹은 아무 데나 잘 어울리는 무난함도 하루 혹은 이틀만 지내면 되는 일시성이 있었다. 결국 내가 청소하지도 관리하지도 않아도 되는 풍요로움이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준 것이다.

호텔 문을 여는 순간, 새하얀 침구 벌판은 마치 갑자기 탁 트인 풍경을 만나는 것과 유사한 뻥 뚫림이 있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침대에 점프로 누우면서 호텔 누림이 시작된다. 여행의 혹은 일상의 피로도에 따라 점프 능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누웠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과 사각거림은 순식간에 일상이 아닌 일탈 모드로 잠금 해제된다.


호텔 문을 여는 순간 매일 보던 집 베란다 뷰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매일 반복되는 패턴의 중간 끊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이트 침구는 호텔과 연상이 되고, 호텔은 여행, 여행은 힐링으로 연결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이트 침구는 일탈 힐링 등으로 연상됨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화이트 침구의 등장은 일상에서 힐링을 하고자 하는 강한 니즈가 반영된 산유물로 생각된다. 비록 내가 세탁하고 관리해야 하는 지속성의 항목으로 접수됬지만 불편함을 넘어서는 힐링요소로써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흰 침구 속에서 사부작 소리를 내면서 발차기하는 그 기쁨을 매일 누리며 산다는 게 또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집콕족과 호캉스의 등장으로 리빙제품의 관심과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니즈가 커지면서 호텔에서 사용하는 시그니쳐 제품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호텔 어메니티, 디퓨져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베딩이 가장 큰 인기 품목이라는 것에서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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