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액자
한달음에 이루어버린 목표의 여운은 짧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9월을 보내고 있다.
바쁘게 9월부터 다음 해 운영계획을 제출하라는 업무지시와 10월에 마무리해야 하는 프로젝트까지 맞물려 눈이 빨개져 끔뻑거리는 내 눈 커플 박자에 맞춰 회사 메신저 알림도 덩달아 번쩍이고 있었다.
그 끔뻑거림이 뭔가 범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업무이야기만 하던 동료가 대뜸 질문을 보내왔다 "넌 삶의 목표가 뭐야?"
가끔 이런 예상치 못한 질문을 통해 우린 성숙해진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답을 못하고 깜빡이는 메신저 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쁜데 이런 걸 왜 물어보는 거야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갈길을 잃고 분주하게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불러 세운 느낌이었다.
목표라는 말의 무게감은 굉장히 크다. 그러기에 쉽게 대답을 못했던듯싶다.
올해 초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보고 듣는 게 많은 직업인지라 적용하고픈 인테리어가 그렇게 많았다. 신혼 때 샀었던 소파는 푹 꺼지고 변색됐으며 식탁은 크기는 4인용이라 하기엔 작고, 어두운 월넛 컬러의 식탁은 전체 집안 스타일과 맞지 않아 볼 때마다 불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테리어를 모두 바꾸고픈 마음이 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벽면을 미드 센추리풍 채도 낮은 옐로우 톤으로 바꾸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널찍한 원목 테이블을 놓기로 머릿속에 그려본다. 거기에 어울리는 장 푸르베 의자들 사이사이에 라탄 소재 의자를 하나 놓고 휴양지 느낌마저 나면 좋겠다 싶었다, 큰 테이블 한가운데 커다란 화병엔 파스텔톤 수국보단 컬러풀 꽃 봉오리도 탐스럽고 채도 높고 화려한 작약을 스타일링해야지라고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스케치해본다.
나의 인테리어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생각보다 넘어야 할 많은 허들이 많았다. 나와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른 남편을 설득해야 하고, 세입자로서 인테리어 적정 투자가능 금액을 책정해야 하고, 그 적정금액으로 내가 원하는 스타일 연출하기 위한 무한 서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역시 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큰 여정이 예상되었다.
가구들을 위시리스트에 넣고 발을 동동 구르던 어느 날, 내가 평소 생각하던 스타일의 인테리어 액자의 할인광고가 떴다. 홀린 듯 구매 버튼을 누르고는 나의 소비심리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하고 제안해주는 알고리즘의 위력에 편리함과 두려움을 느끼며 결제창으로 넘어갔다.
인테리어 액자를 벽에 거는 행위를 했을 뿐인데 막막하던 집 꾸미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하나씩 바꿔 나가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시작은 생각보다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최종 꿈의 집에 도달하기 전 마중 나와준 액자가 내게 큰 힘이 된 것처럼, 내 최종 목표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게 된 고마운 사건이었다.
인테리어와 공간의 심리를 담아 책을 출간하기 위해
마중물 목표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고
한 권씩 관련서를 읽어 성취감이라는 정신적 에너지를 끌어올려 봐야겠다.
마중 나가는 일로 좀 바빠지겠지만, 내게 찾아오는 소중한 것들을 그냥 오지는 않더라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르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나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시간들이 잦아질수록 끌어올릴 힘이 생기곤 한다.
넌 삶의 목표가 뭐야?라고 묻는 그 동료는 숫자에 민감했다. 연봉이 각자 어떻게 다른지, 인상폭은 어떻게 다른지 수치화된 목표가 궁금했었던 것 같았다.
"난 내 삶을 능동적으로 살고 싶어,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면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환경이 되는 게 목표야"
사실 그 문장 안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겁 없이 뛰어들 수 있을 만큼 먹고살기에 문제가 없을만한 경제적 여유와 심리적 여유가 포함되어있었고, 원할 때 일을 골라서 할 수 있을 만큼 업계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매번 바뀌고 수정되다 보니 명확하게 말하기가 애매하지만, 공간을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커다란 비전 안에서 수많은 나의 가능성을 펼치다 보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나씩 액자를 걸면서 전체의 공간을 서서히 바꾸어가도록 내 인생 분위기 반전을 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