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글렌 커피
도쿄에서 마시는 노르웨이 커피맛은 어떨까!
작은 의구심에서 이번 여행이 시작됐다. 노르웨이에서 자국 외에 일본에게만 매장을 허락했다는 푸글렌 커피의 스토리도 외외였지만, 북유럽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가까이에서 느끼는 북유럽 감성을 느끼고싶어셔였을까, 푸글렌 커피의 스토리텔링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주말에 뭐하세요라고 물으면 영화 보고 친구 만나요라는 답이 아닌 하는 남다른 취미와 이력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러 가는 느낌이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의외로 로맨틱하고 감성적이다. 원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떠날 수 있고, 일정 조율도 자유롭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오랜만이었다.
2003년 스마트폰이 보급화 되기 이전에 해외여행을 가본 후 처음이니 정말 오랜만의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그때 당시 유럽여행을 떠날 땐 무려 3달 전부터 비행기표와 기차표 타임스케줄을 줄줄이 스터디하고, 묵을 숙소를 이메일로 예약하고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6개의 숙소에 모두 전화해서 제대로 예약이 됐는지 확인 전화를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타지에서 노숙자 신세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첫날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서 2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가자는 일정을 공항 도착 후 짐을 찾고 화장실 갔다가 버스 타고 숙소까지 가는 시간을 철저하게 계획했었다. 하지만 히드로 공항에서 어떤 히잡을 쓴 남자가 내 엉덩이를 주무르고 가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했는데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없어서 웃었던 게 화근이 되었다. 그 히잡을 쓴 남성이 계속 따라와서 여자화장실에 1시간 동안 숨어있다가 나갔던 기억이다.
그때 당시에는 처음 가는 해와 여행이기도 했었고 부모나 친구 없이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기에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했었지만 이처럼 도착하자마자 모든 계획이 일그러졌다. 첫 해외여행의 시작이 당황스러움과 공포로 혼재되면서, 여행에 대한 마인드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굵직한 큰 프레임은 정하되, 사사로운 것들까지 계획하지는 말자. 우연히 마주한 일들에서 경험하는 일상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일본 여행 첫날의 오전 계획은 푸글렌 커피를 마시는 것 오로지 하나였다.
요오기 공원 근처에 위치했기에 혼자 유유히 요오기 공원을 먼저 산책하기로 했다,
아침산책 후 마시는 커피 한잔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한적한 평일 오전 공원을 걸었다.
이끌리듯이 본능적으로 공원을 동네 산책하듯 걸었다. 걷다가 들어온 길로 나가면 되겠거니 했는데,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알고 보니 요 오기 공원은 서울 여의도 공원의 두배만 한 크기의 공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구글 지도로도 공원길을 찾기가 어려웠고, 배터리마저 한자리 숫자였다.
길을 잃은 심정보다 핸드폰 배터리의 상태가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이대로 있다간 커피를 음미하면서 마실게 아니라 벌컥벌컥 배를 채울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인적도 드물어서 물어볼 사람이 없던 차에 멀리서 남자 한분이 아이와 함께 오고 있었다.
여행객이기도 했고 빨리 커피도 마시고 싶고 다급한 마음에 달려가서 말을 걸었다.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자기도 가는 길이었다며, 같이 가자하는 게 아닌가! 아침이기도 하고 옆에 아이도 있으니 낯선 남자였지만 의심 없이 따라갔다.
걸으며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하기에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본인은 광고디자이너로 프리랜서이고 부인은 집에서 청소 중이라 아이와 산책을 나왔다고 한다.
요오기 공원에 까마귀가 많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크로우 영화의 미장센까지 이야기하며
디자이너로써의 고민까지 나누는 즐거운 대화를 하며 공원 출구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도쿄 요오기 공원에서 처음 만난 일본 디자이너와 이집트 출생의 감독이 제작한 미국 영화 이야기를 영어로 나누며 산책을 하다니 산책하는 10분간은 글로벌 디자이너가 된듯한 마음에 잠깐 해외에서 일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판타지 가상 월드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푸글렌 커피는 유명세만큼이나 눈에 띄고 보기 좋은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좁은 골목을 몇 군데 지나 주택가 사이에 웅크려져 있었다.
지금이야 국내에도 골목상권의 발달로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 푸글렌 커피를 찾아가는 그 길목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선 줄 알고 몇 번을 핸드폰을 위아래로 흔들었는지, 머리가 어질 했다.
겨울임에도 커피숍 밖의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2004년 당시 국내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카페 벽면에 긴 나무 소재의 의자들이 고정되어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철제 테이블이 놓여 카페 벽을 등지고 일제히 지나가는 이들을 바로 보는 위치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만 으로도 이미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카페 안의 분위기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일본 여행은 주로 친구들이나 가족여행으로 와서 맛집 위주의 여행을 다녔었고, 북유럽은 가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북유럽 커피 브랜드의 커피는 마셔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섰다.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카페 사이즈는 안정감을 주었지만 카페를 들어서자마자 흘러나오는 탱고 음악은 순간 온몸이 본능적으로 이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탐지하기 위해 활동이 잠시 멈춤 상태로 있었다. 그렇게 아주 짧은 멍한 상태가 지난 뒤 순조롭게 카푸치노를 주문하고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추운 몸을 잠시 녹인 뒤 카페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천정재와 벽면 가구 모두가 월넛 우드 컬러 소재로 마감되어 클래식함이 묻어났다. 오픈 키친으로 오전이라 좀 한가한지 한분 이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능숙한 영어로 주문을 받는 그녀를 보며, 저분이 선곡인 BGM인가 카페 운영 매뉴얼에 따른 노래 선곡인지를 그녀의 빠른 손놀림을 보며 생각했었다.
카푸치노 거품을 한가득 묻힌 채 현악기 연주에 리듬을 맞춰가며 마치 "마네키네코"인양 끄덕이는 내 모습이 창문에 흐릿하게 보였다. 우습지만 또 여행지에서의 묘미가 남들 눈치 안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며 자신 있게 이분위기를 즐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지나가는 일본인들의 자전거 탄 풍경이 전부인데 이상하게 그들을 보며 저렇게 지나간 자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생각을 하다가, 한번 담근 강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눈 헤라 클레이 토스 말이 생각났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다신 없을 것이고, 지나가는 풍경 또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 타는 풍경을 보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이 현재 감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를 좀 관심 있게 들여다본 근래 경험해 본 적 없는 몰입의 경험이었다. 카푸치노의 거품이 사그라들면서 차가워진 한 모금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다.
전혀 다른 조합의 풍요로움으로 감정이 가득 차는 순간, 그 공간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에 몰입이 가능해 짐을 경험했다. 카푸치노의 거품이 유난히 풍성하게 느껴진 그날의 아침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간 혹은 일상에서 전혀 다른 것들의 조합으로 남다른 퍼포먼스와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것.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공감각적인 페어링이 중요하다는 것.
다감각적인 경험을 하는 순간, 몰아치는 사색의 시간
디자이너로써 들으면 수치스러운 말이 하나 있다. "진부하다는 말"그 안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대로 작업했구나,
별로 매력이 없어!
너만의 차별성이 없다는 건 시장성이 없다는 말이야!
외에도 다양한 말들이 혼재하지만 결론적으로 별로야라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단어이다.
진부하지 않은 디자이너의 길, 진부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길 모두가 알고 있으면 좋을 공간
푸글렌에서의 경험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