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라키 헤일로에디션
해지기가 시작될 무렵 유난히 하늘의 색의 변주가 마음을 뭉근하게 할 때가 있다. 코럴 핑크와 오렌지 컬러가 자연스럽게 물들여지고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 컬러들 중 유난히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의 영화 같은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우연히 만나는 그 장면을 보면 마치 사춘기 시절 감수성을 녹여낸 일본 애니메이션의 엔딩 장면이 그려진다. 각자만의 길에서 고군분투하며 살다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과정의 서사가 노을을 보면서 떠오른다. 이렇듯 스치는 장면 속에서 기억이 강하게 각인되는 순간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어린 시절 코럴 핑크색으로 기억되는 장면들이 있다.
20살에 처음 타보는 인라인스케이트와 보드를 가르쳐준다고 애쓰던 친구들
화장 잘하는 친구 자취방에 몰려가 메이크업 강좌를 받고 수업에 늦은 기억
영화관에서 처음 잡아본 남자 친구의 손
좋아하는 친구와 한강 벤치에서 떡볶이를 먹다 발견한 헬기에 손 흔들던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것을 들은 호프집 화장실 앞
처음 경험한 것들은 좋은 기억이던, 안 좋은 기억이던 언제나 우릴 강하게 흔든다.
모든 것이 익숙해진 지금, 그때의 세밀한 떨림과 설렘이 그리워져 그 시기에 봤던 영화를 찾아보다가 "첨밀밀"을 보게 되었다.
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 장면이 그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떠올랐고, 영화는 헌신적인 남자 주인공의 멜로드라마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 속 장면 하나로 영화를 선택했다.
분명히 봤던 영환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그때의 나를 만나고픈 마음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영화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내 마음이 떠올랐다.
서로의 개인 사정과 각자 원하는 일을 찾아가면서 어긋나던 인연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때의 나는 많이 답답해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영화를 보고 아쉬움보다는 더 큰 안도감이 생겼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과의 인연을 맺을 기회가 있었으나. 그 연인과의 인연을 선택한다면, 본인이 열망하던 일들에 대해 많은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의 그때의 내가 바라던 시나리오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사랑만을 향해 갔다면,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본인이 해보지 못한 아쉬움과 결핍으로 인해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련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기준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수많은 시련과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함께 어려운 시기에 나누던 희망과 공감대는 아녔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첨밀밀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 장면은 다가올 그들의 암울하고 고단함을 내포하기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무언가를 향해 가는 간절함과 기대감으로 강력하게 기억되고 있었던 것 같다.
꼭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캡처되는 일들이 많아질 때,
희망과 기대감이 많아지게 된다.
일몰을 앞두고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30분 전, 일몰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펼쳐지는 장명도 매력이 있지만 노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하루 중에 30여분 정도만 우리가 만 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끌림을 느끼게 된다. 멍하니 바라보며 끌어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헤아리기엔 다소 아쉬운 시간.
이런 마음을 누가 헤아리기라도 한 듯 선셋 무드등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가 노을을 보며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 하루 중에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그 장면들 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집안에 물 들어져 간다. 무드등을 켜놓고 사색의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의 찬란했던 순간들도 길게 이어지진 않을까라는 열망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