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이 첫째 날 귀국 비행기 티켓 알아본 날
나에게 3번째 방문인 방콕은 굉장히 로맨틱한 도시로 여겨진다.
첫 방콕에선 프러포즈를 받았고, 두 번째 방문은 결혼기념일 여행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오게 되는 이 시간들도 내겐 스위트 한 경험으로 남겨질 것이라 확신했다.
미리 다운로드하여놓은 영화를 보며 즐거운 비행까지만 해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다음날 첫 어학원 등교날이 되기 전 까지는 말이다.
8:40분에 호텔 로비로 어학원 버스가 오기로 약속이 되었지만,. 첫날이다 보니 15분 전에 미리 내려와 로비 소파에서 좀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파에 깊숙이 앉아 설레는 마음을 허공에 발차기로 표현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 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좀 두렵지만 잘 결정한 거야! 아이들도 이렇게 좋아하잖아! '라며 본인의 결정에 확신이 생겼고 내가 생각한 해외살기의 한 장면이라며 내심 뿌듯하게 나를 독려하고 있었다.
로비 차장 밖으로 우연히 고개를 돌렸을 때, 현지인 한 분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벤 옆에 서계셨고 누가 봐도 드라이버였다 그는 내게 바디랭귀지로 거기로 가냐고 물었다.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킨 다음 나를 가리켰다) 음,, 주위를 둘러봐도 나 밖에 없었다. 분명 내게 하는 말이었다. 미리 어학원 드라이버분이 대기 중이시구나 라는 생각에 아이들과 벤으로 향했다. 건너편 주차장에 있던 드라이버는 우리 편의를 위해 로비 바로 앞으로 차를 운전해왔다.
우리 숙소에는 어학원을 가는 친구가 우리 애들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에 좀 섭섭했지만 일찍 나왔고, 일찍 도착한 드라이버 덕에 어학원에 빨리 도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몰라서 어학원 가는 차량이 맞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에게 조심히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차량이 떠나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쌩판 모르는 현지인과 아이들 단둘만 차를 타고 간다? 어? 뭔가 이상했다.
만약 저차량이 어학원으로 안 간다면? 나도 함께 탔어야 하나? 순간 수많은 범죄 영화화 당황스러움에 막 뛰어가서 일단 차량 넘버를 찍었다.
그리고 어학원 담당자에게 메시지를 송부하며 아이들 출발했어요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분에게 이런 메시지가 왔다.
" 아이들 차량 아직 출발 전입니다. 어머님 전화드릴게요"
아이들을 보내고 호텔 근처 산책을 하려고 숙소 후문 쪽으로 나가는 길에 받은 이 메시지는
나를 혼돈과 공포, 비현실적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넘은 무한한 우주 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숨이 막혀버린 듯한 무중력 상태에 빠졌다.
순간 호흡이 가파지고, 어학원에서 전화가 오는데 심장이 너무 뛰어서 정상수치를 훌쩍 넘긴 Bpm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핸드폰 통화버튼을 옆으로 밀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통화음 세 번 만에 겨우 받은 전화 속 담당자는 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것이다.
내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원장이 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순간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우리가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는 악몽을 꿀 때 마음은 뛰고 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꿈속처럼,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극도의 공포감이었다.
"분명히 제가 보낸 벤으로 아이들이 탑승했어요 어학원으로 가는 차량이라고 확인도 했고요- "
어학원 말이 한국인 실장님이 아이들을 통솔해서 이제 차량 탑승을 시킨다는 것이다 혹시 호텔 로비에 있냐고 묻는데 나는 호텔 후문 보도블록에 주저앉아있는 상태였다. 빨리 로비로 가면 되냐고 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탐승해서 출발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 우리 애들은 이미 출발했는데 다 태운 게 말이 되느냐!! 우리 애들이 다른 차에 타고 갔는데 모두 탑승을 했다니 이해가 안 된다며 온 힘을 다해 소리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핸드폰이 있으니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걸었다. 첫째는 2G 폰으로 카카오톡이 되지 않아 둘째 녀석의 키즈폰에 깔린 보이스 톡으로 전화를 하는데 이게 스마트 폰이 아니라 보이스톡은 안 되는 것이다. 둘 다 전화했는데 내가 현지 유심이라 디렉트 전화도 통화가 안되고, 한국에 있는 신랑한테 전화해서 빨리 애들 어딘지 물어봐달라 하니, 우리 신랑은 왜 셋이 같이 있지 않냐며 물었고, 그 자초지종을 또 설명하긴 긴박했다. 빨리 전화해보고 내게 전화 달라고 끊었다. 때마침 어학원 수업 첫날이니 학부모 어학원 투어 서비스가 있다 해서 부랴부랴 택시 타고 학원으로 달렸다. 어찌 된 일인지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를 잘하고 있었다.
원장 샘도 어찌 된 명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이들이 잘 도착했다고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하원 후 이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사건인 즉 우리가 너무 빨리 나와 대기 중이었고, 때마침 오늘 첫 고용된 드라이버도 첫 출근 첫 업무로 일찍 도착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이학원 실장으로 착각을 한 거고 내가 아이들을 태우고 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학원으로 이동 중 진짜 실장이 왜 안 오냐는 콜을 받고 다시 애들을 태운 차량이 호텔 로비로 가서 나머지 아이들과 실장을 태워 출발한 것이다. 나는 그때 호텔 후문에 주저 앉아있어 전혀 아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여하간 아이들이 잘 도착해 다행이고 어학원에서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 들돠 잠깐 미팅 후 밖으로 나왔다.
긴장이 풀리자 밀러 오는 허기짐은 나를 극으로 몰아갔고 학원 앞 센트럴 플라자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고 이동하려고 들어갔다. 허기짐에 세 가지 메뉴를 결제를 하려고 보니 카드결제는 앱 결제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와 이게 결제를 못해서 밥을 못 먹는다 생각하니 좀 오기가 발동했다.
푸드코트에서 밥 먹으려고 방콕까지 온 게 아니다!! 맛집 가서 난 배부 게 먹으려 한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괜히 타깃 없는 심술을 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금 계산이 가능했는데 카드사 용안 되고 앱 결제만 가능하다는 말에 현금이 가능한지 물어볼 생각을 못했다. 오전일로 인해 합리적인 사로를 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게 분명하다. 합리적인 사고니 어쩌니 말을 이어가 보지만 좀 더 직관적인 표현으로 그냥 바보 같았다.
결제 이슈에 대한 문제로 구글 맵 마크된 맛집으로 이동 중에 첫 스콜을 만났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많은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태국 온 게 잘 한일인 건지, 너무 준비 없이 온건 아닌지 수많은 생각들로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태국 북부 가정식 집을 찾았다.
길만 건너면 바로 식당인데 식당을 갈 수가 없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갈 수가 없었다. 일단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없었다. 차들을 빗길 속을 빠르게 달렸고, 나는 배고픔이 극에 달해 시선이 그리 멍텅 졌을 뿐 아니라 오전에 풀린 다리는 꼿꼿하게 잘 서있을 수 없었다. 저 멀리서 달려온 빠른 속도의 그랩 택시는 내게 열정적인 물길을 뿜으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물살이 내 가슴팍을 적시던 그때 감정의 소용돌이가 급하게 몰아치며 나는 결심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귀국 비행기표가 가장 빠른 건 언제 인가 찾아보기로, 일단 배는 고프니까 메뉴 주문 뒤 알아보기로 말이다.
가정식 백반집 같았던 이 식당은 반찬이 쭉 나열되어서 내가 메뉴를 선택하면 바로 접시에 담아주는 급식 형태의 곳이었다. 덕분에 바로 허기짐을 채울 수 있었으나 귀국행 비행기표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 정말 배고픔이 극에 달하던 그 순간 입안으로 바쁘게 밀어 넣은 "꺵항래"는 온몸의 세포를 다 깨우는 느낌이었다. 음식 하나를 맛보고 전율을 느꼈다는 말의 표현은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세포가 살아나는 이 느낌이 바로 전율을 느끼는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메뉴도 같이 시켰지만, 다른 건 맛만 보고 태국식 돼지갈비찜인 꺵항래를 한번 더 시켜먹었다.
닭볶음탕과도 비슷한 느낌의 맵고 달달함이 느껴졌다. 혼자서 첫날 너무 허우적대다가 따뜻한 밥 한 끼에 정말 평안해졌다. 너무 맛있어서 아이들과 먹으려 테이크 아웃하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 또 스콜이 한바탕 내렸다. 위장 가득 채워진 이 행복감을 스콜에게 내줄 수 없다며 바로 옆에 잇는 카페에 들어갔다.
느슨하게 누워있는 고양이와 갤러리처럼 꾸며진 아기자기한 카페가 조용히 마음을 다 스리가 좋은 장소로 여겨졌다. 자리를 잡고 앉은 순간 눈앞에 보인 건 초등학교에서 사용했었던 의자가 생각났다. 타국에서 펼쳐진 스릴러 영화를 한편 찍었던 나는 무서움과 당황스러움에 입국 하루 만에 한국이 그리웠었나 보다 매운 닭볶음탕 맛 갈비찜과 초등학교 때 사용했던 의자를 보며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의자를 보며 초등학교 시절 왁스칠을 매일 했던 나무 바닥으로 카페를 꾸몄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과 이 카페 주인이 그런 경험을 했을 리 없겠다며 혼자 피식 웃었다. 오늘 처음 올라간 입꼬리였다.
다행히 꼬였던 감정의 매듭들이 하나씩 풀어지고 있었다. 의자 말고 하나씩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페에 전시되어있는 그림이 내게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일러스트와 소통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났다. 저 수많은 볼 중에 오늘은 글루미 한 블루 컬러가 나왔었구나. 저렇게 뒤엉켜있으면, 내 감정들도 랜덤이 될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에 그 어떤 탓도 하지 않기로 했다
주방 벽면에 걸린 캘리그래피가 또한 나를 다독였다. 마치 이 카페가 나를 불렀던 것처럼 소품 하나하나가 나를 향해 있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내 중심으로 움직였다. 기분 좋은 원두 냄새도 영어 발음에 4성이 들어간 현지인의 말투도 너무 따뜻했다.
비가 그치고 배가 부르고 나니, 조금씩 다른 것들이 보였다. 비비 온 뒤 바닥의 남아있는 물기의 반짝임은 생기 있어 보였고, 지나가는 오토바이 드라이버의 채도 높은 레드 바이올렛 우비 색과 동유럽 건축에서나 볼 법 한 코럴 핑크 외관의 조화는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처럼 느껴져 작품 속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구글 맵을 켜고 숙소 쪽으로 그냥 걸었다.
걷기가 길 위에서 하는 철학수업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의 에피소드로 어학원을 가장 빠르게 보러 갈 수 있었고, 첫 수업 때 아이들이 조금은 두려웠던 마음에 엄마를 보고 좀 위안을 얻었으리라!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뭉근해졌다.
결제 거부 이슈는 나를 맛집으로 이끌었고 깊은 맛에서 차분함을 얻을 수 있었고,
스콜을 피해 만난 카페에선 내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안좋은상황이 없었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면 절대 일어날 수없었던 동선과 경험으로 내 안의 또 다른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 들이었다. 태국의 시작이 축축했지만, 스콜이 강하게 애리지만 금세 멈추는 것처럼, 내 맘도 어느새 뽀송하게 말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