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와- 저기 저 구름 너무 이국적이다."
이국적이라는 것을 느끼는 건 어떤 순간 들일까? 그리고 그 이국적인 느낌을 우린 왜 긍정적으로 주로 느끼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이국을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달라졌을 때.
일상의 다른 요인들 바로 주변 환경이 달라졌을 때 그런 느낌이 들게 된다.
내가 느끼는 이국적 요소로는 도로에 나열된 가로수가 바로 그 역할을 하곤 한다.
매일 만나는 장면 속에 하나의 부차적 요소로 여겨지던 그 장면이 바뀌게 되는 순간, 전혀 다른 곳에 와있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된다.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돌하르방과 야자수를 보며 아마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이국을 느끼는 순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 나라 문화가 깃든 건축물과 문화재, 다른 언어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앞서 말했듯 단연 그 나라의 나무들에서 이국적임을 가장 크게 느끼곤 한다.
방콕은 거리나 사원에서 보리수를 종종 만나곤 했다.
국내에선 자주 볼 수없었던 보리수의 모습은 내게 좀 더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보리수 밑에서 석가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깨달음의 나무라 일컬어지기도 하고,
불교를 숭배하는 대상의 나무로 불교 국가인 방콕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겨진다고 한다.
실제로 보리수를 만나면 그 사연을 모르더라도 여러 번 눈여겨보게 되는 나무가 된다.
뿌리가 얽혀 나무가 된 것인지 가지가 얽힌 것인지 모호한 이나무를 보고 있자니
뿌리와 가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뿌리는 땅속에서 영양분을 빨아올리고 줄기를 지탱하는 기관이고, 가지는 나무나 풀의 원줄기에서 뻗어 나온 줄기인 건데 이 나무는 뿌리가 위아래로 뻗어나가는 형태라면 과연 어디까지가 뿌리이고 어디까지가 줄기인 걸까. 가지와 뿌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나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찬찬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여행 중에 만나는 여백의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에 맞추어 라벨링 된 삶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린 굳이 줄기와 뿌리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기능과 해야 할 영역 안에서만 기능을 해내려 하진 않았나라는 생각이다. 우린 뿌리지만 줄기로 뻗어나갈 수도, 가지들이지만 서로 기대고 얽혀서 지탱햐줄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방콕에서는 유독 길에서 꽃을 자주 만났다. 그것도 플루메리아 꽃을 자주 만났었는데,
조화로 만들어진 액세서리가 기념품으로 팔릴 만큼 인기가 많은 꽃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 갑자기 이 꽃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꽃말이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한다. 숙소 주변에도 많이 보여서 돌아오는 길에 떨어진 꽃을 주워다 숙소에 놓곤 했다.
플루메리아뿐 아니라 방콕에서는 자주 마주치는 꽃이 있다.
능소화와 비슷하게 생긴 꽃이 있는데 그 꽃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이 예쁜 꽃이 떨어져 힘없이 옆으로 축 늘어져 바닥에 붙어있으면 마치 동물 사체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비가 많이 왔던 날 방콕에서 처음으로 비에 젖어있는 쥐 사체를 거리에서 보고 난 뒤 내게 생긴 트라우마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콕은 더운 날씨 때문인지 곳곳에 고양이나 강아지가 누워서 쉬거나 잠을 자곤 하는데 쥐를 본 후부터는 축 늘어져 잠자고 있는 동물들을 보고도 그렇게 놀라기 일 수였다.
그래서인지 유독 바닥을 보고 걷는 버릇이 그 뒤로 생기곤 했다. 덕분에 룸피니 공원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도마뱀을 발견하기도 하고, 주변을 면밀히 살피게 되면서 보지 못했던 세세한 것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보리수와 시간을 많이 보냈던 그날도 아마 방콕에서 처음 접했던 비 오는 날의 그 에피소드 덕분인 것 같다.
우리가 여행을 즐기는 건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 경험이 긍정적일 수도 그렇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경험들이 또 다른 새로운 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고 또 하나의 해결책을 늘려줌으로써 하나의 데이터로 쌓인다는 사실과 그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통찰력이 높아지는 결과치는 내곤 한다. 언제나 항상 나쁜 것도 항상 좋은 것도 없는 안 좋은 일을 통해 우린 또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