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아트문화센터 전시_ our motoway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차려주시는 아침밥옆에 아빠는 가지런히 신문의 사설 부분을 접어서 식탁에 놓아주셨다. 바쁜 고등학생 시절 사회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통해 대입에 도움이 되길 바라셨으리라. 하지만 그땐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반항의 기운이 넘쳤다. 무슨 말을 하든 일단 싫다는 말이 먼저 나오던 때였다. 그날도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는 둥 마는 둔하고 사설을 집어 읽는 시늉을 했다. 한자가 가득한 사설보다 나는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칼럼이 좋았다. 아빠가 접어놓은 사설은 제쳐두고 칼럼기사를 읽었다. 우리나라 취재를 온 외신기자가 쓴 글이었다. 칼럼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은 항상 공사 중이다"라는 말로 시작한 글이었다. 서울에 왔었던 그는 어디를 가도 항상 공사 중인데 왜 다 허물고 다시 짓는지에 대한 의구심에 대한 의견으로 가득 찬 글이었다.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이 항상 공사 중이라는 말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그때 당시 나는 해외에 한번 도 나간 적이 없었고 한국 밖의 세상은 교과서나 가끔 영화배경으로 보는 게 전부였던 때였기에 공사 중인 게 왜 이색 풍경인가에 대한 아이러니 함이 있었다. 글을 읽고 등교를 하는데, 집 앞에도 지하철 5호선 공사 중이었고. 주말에 할머니 댁에 가는 고속도로 풍경에서도 많은 건물들이 지어지는 게 보였다. 익숙하게 생각했던 풍경들이 어색하게 보였다. 왜 이렇게 공사하는 데가 많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바쁜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20여 년이 지나고 2022년 태국의 한달살이를 하던 중 방콕의 한 사진작가의 사진전을 보게 되었다.
Our Motorway라는 주제로 빠르게 진화하는 방콕의 순간들을 담아낸 전시였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담은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분명 학창 시절 아빠의 차 안에서 창밖의 공사현장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라며 바라보던 10대의 그 시선이 담겨 있었다. 이 작품 앞에서 필름이 뒤로 빠르게 감기면서 그때 신문을 읽던 순간이, 차창밖으로 혼자서 의문을 던졌던 그 순간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20년이 지나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급성장하던 우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모든 나라가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줄 알았다. 빠르게 성장했던 8-90년대였다. 하지만 그때의 성장은 빈부격차, 환경문제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왔다. 타인의 모습을 통해 나를 인지하게 된다는 말처럼, 태국을 보며 그때 우리나라의 모습이 이랬으리라 생각했다.
사진작가는 고속도로를 주제로 빠르게 성장하는 자국을 응원하는 듯 작품을 나열했다. 도로 건설 중에 만난 개들의 등장이 흥미로웠다. 마치 연출한 것처럼 걱정스러운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미래에 다녀온듯한 모습이었다. '빠른 성장이 몰고 올 미래를 잘 대비하고 있지?'라고 묻는 것 같았다. 건강한 우리 아이들, 내가 하고 싶은 곳을 어디든 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 읽고 싶은 책을 언제든 읽을 수 있는 건강한 눈을 가진 이 화려한 이 시간들이 언젠가는 멈추고 노화의 길을 걸으며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아진다는 것을 새기기로 했다. 저 개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묘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과 동시에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저 작품 앞에서 서성였던 건 아마도 내 과거와 미래모습을 오가느라 바빴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