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인연
방콕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시청하고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백종원의 푸드 스트리트 파이터!
길거리 음식 소개를 맛깔나게 하기도 하지만 백 선생님의 맛있게 먹는 비법과 겨드랑이 사이에 팔짱을 끼고 음식을 기다리며 설레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면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덩달아 설레게 되곤 한다. 물론 나 또한 정주행을 했고, 소개했던 대부분의 음식점을 가보았다.
역시나 다 맛이 있었지만, 방콕 한달살이 하며 두 번 이상 찾아간 음식점이있는는데 프롬퐁 역 근처에 있는 룽루엉국수집이다. 맛있기도 했지만 토핑과 국수 선택에 따라 맛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매력에 세 번이나 방문했었다.
첫 방문한 날 센스 없게도 점심시간에 방문을 하게 되어 그야말로 식당은 인산인해였다. 배달을 기다리는 그랩 기사들은 물론 식사를 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어디가 줄인지도 모르게 어수선했다.
어리숙하게 두리번거리는 나를 빠르게 캐치하고는 혼자 왔으면 여기 앉으라는 능숙한 스텝의 진두지휘 덕분에 많이 안 기다리고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모르는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메뉴판을 뒤집에 보며 백 선생님이 먹었던 걸로 고르려고 뒤적이는데 앞자리 앉은 분이 친절하게도 추천해줄까요? 라며 말을 건넨다. 태국분들의 영어는 알아듣기 힘든 악센트가 있지만 그 특유의 4성이 깃든 영어는 친절함과 상냥함이 장착되어있어 거절하기가 어렵다. 추천해준다는 말에 백 선생님의 픽이 아닌 현지 로컬분의 픽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분은 내게 매운걸 잘 먹느냐고 물은 뒤, 똠 양 국수에 에그누들을 추천해주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국수가 나올 때까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다. 방콕살이는 왜 하게 됐고, 얼마나 있다 가는지 다른 나라도 이렇게 오래 머무는지 등 질문을 하는데 마치 인터뷰하는 것 같다고 하니 본인이 HR담당이라며 한참 웃었다.
그분은 혼자 식사하러 온 로컬 회사원이었고 그날은 휴가라고 했다. 나라 불문하고 직업병이라는 건 진짜 어디에다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국수를 먹었다, 그런데 똠 양 국수에 계란 누들은 뭔가 언발란스했다. 음,, 계란 맛이 똠 양의 다양한 맛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어 생각보다 맛있게 먹지는 못했고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그분의 말에 집중하고 대답을 고민하다 보니 맛에 대한 음미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방문하고 똠 양 국수에는 미들사이즈 면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하간 로컬 분과 다양한 주제의 얕은 대화들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즐거웠다. 다 먹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세상에 본인이 계산한다며 순식간에 계산을 해버리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에 커피를 사고 싶다고 했더니, 인테리어가 좋은 카페를 소개 주겠다고 했다. 수많은 인터뷰 중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말을 흘려듣지 않고 제안한 센스에 또 한 번 놀랬다.
이 카페가 오늘 오픈한 카페라 내가 굉장히 러키 하다며 카페로 안내했다. 속으로 여행책자에 없는 신상 카페를 간다는 생각에 들뜬마음으로 이게 여행이지!라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났다. 본인이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가 1월이었는데 한국이 엄청나게 추운 나라라 너무 놀랐다는 말들로 본인도 한국에 가보았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프롬퐁 역 바로 앞 UOB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의% 카페를 지나치더니 오피스 내로 올라가는 엘 이베이 터 버튼을 눌렀다. 누가 봐도 여긴 카페가 아니고 오피스인데 혹시 당신네 회사 구경시켜주느냐라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속으로 회사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타 주려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처음 만난 이 사람을 뭘 믿고 이런 데를 같이 가지? 혹시 오피스에 갇히는 거 아닌가? 등등 별 생각들 다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UOB Private Rounge가 나온다.
본인이 여기 고객인데 오늘 라운지 오픈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문 열자마자 달려온 거라며 신나게 설명해준다. 갑자기 은행 직원들이 4명이 오더니 가방을 받아주고 커피 주문을 받고 상냥한 얼굴로 맞이해준다.
그분 말대로 오늘 오픈한 듯한 인테리어의 디자이너의 각잡힘이 느껴졌다. 그분이 태국 은행원에게 뭐라 말을 건네니 나보고 편하게 구경하라고 한다. 마치 여기까지 와서 시장조사 온 기분에 또 신나게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태국 무드가 입혀진 인테리어가 아님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은행의 특성상 고객의 안락함을 위한 패브릭 체어와 금속과 매시브 한 흐름이 돋보이는 대리석 소재로 가 적절히 믹스된 인테리어로 특별할 것 없는 만 방콕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모던함이었다.
기대했던 똠 양 국수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태국 로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카페를 가보진 못했지만
그날 연차의 소중한 시간을 내게 선뜻 내어주며 에그누들을 추천해주고, 프라이빗 뱅킹 라운지로 초대해준 방콕 친구의 친절함 덕에 방콕에서의 우수고객 서비스도 누려보게 되었다. 길거리 광고판에 걸린 연예인의 사생활을 이야기해주고, 블랙핑크 리사가 진행하는 라디오가 인기가 많다는 가십 이야기들과 방콕의 그랩 서비스로 대단히 편리함을 누리지만, 오토바이들의 난폭운전에 대한 문제점도 이야기하며 방콕 직장인이 된듯한 점심 스몰토크를 나누었던 sid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다음 일정으로 급하게 시간 맞춰가야 한다며 제대로 인사를 못 했던 일일 로컬 친구인 sid에게 언젠가는 제주도에 가게 되면 4-6월 사이에 가는 걸 추천한다는 말을 못 건넨 것에 아쉬움을 건네본다.
나도 한국에 온 외국인 분들에게 가벼운 스몰토크를 건넬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