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에서 메아리는 더 크게 울려 퍼진다.
자, 이제 털어놔봐, 그래서 넌 요즘 어떤데,
너는 상대에 대해 막 캐묻지도 않지만, 네 속이야기도 안 하는 거 같아
친한 동료나 지인들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한참 수다를 떨고 신나게 웃고 손뼉 치며 리액션하고 만남이 끝나 당이 떨어질 때쯤 그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내가?라고 반문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나는 상대가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절대 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상대도 지루할 테고, 나 또한 공감되지 않는 주제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대화의 목적은 지식 또는 정보 전달과 함께 감정 전달에 있는데 대다수는 지식 정보 전달 대화에만 신경 쓰지, 감정 전달 대화에는 영 시원찮다는 지적들이 많다.
맞다. 나는 그지적을 받을 대상자 중에 한 명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질투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는 상대를 사회에서 많이 만나서일까,
기쁨도 슬픔도 자제하게 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근육이 굳은살처럼 두터워졌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내 감정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한 사람인가 에 대한 의구심으로 상대를 탐색한다.
호모사피엔스처럼 상대가 나의 적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험담과 허구를 생성해 내며 인지 혁명을 일구어낸 것처럼 우리는 각자 사회에서 나와 함께 할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알아보곤 한다.
대화의 시작은 주로 관심사 혹은 주변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날씨, 좋아하는 운동, 영화 이야기 등 주제는 다양하지만, 누구나 생각할 법한 단편적인 일상과 같은 내용들이다. 정치성향도 종교색채도 절대 드러나지 않는 중용의 주제들을 들춰내고 대화의 주제가 끊이지 않게 이어가다 보면 생각의 합이 이루어지는 지점이 나타난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상대가 나와 성향이 비슷한가 혹은 나와 같은 공감대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이 된 경우에만 조심스럽게 내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일이나 사회 전반의 이야기들을 할 때는 전혀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지만 이상하게 내 존재에 대해 너무 급하게 알려하거나 들춰내면 그게 또 그렇게 당황스럽고 불편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자주 가던 커피숍의 사장님이 단골을 알아보고 자주 마시는 음료를 만들어 주는 것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카페를 옮긴다는 말을 듣고,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모습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예민하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 정이 없다거나, 건조하다고 난색을 표할 수 있다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그와의 만남을 줄이거나 피하게 된다.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주로 책과 소통을 하곤 한다. 나와 전혀 만나지 못하는 시대의 작가들이지만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면 또 그렇게 마음이 푸근해지고 깊이 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내 속 깊은 친구.
서로 기분 나쁠 일도 없고 오해할 일도 없어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의 친구가 없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있다다면 함께 수다를 떨 수 없다는 아쉬움은 떨쳐낼 수가 없다. 그렇게 그들과 수다를 떨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차곡차곡 생각의 정리가 되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게 동굴 속에서 내 목소리가 고스란히 글로 새겨졌다. 한번 뱉어버리면 휘발되는 말이 아닌 글이기에 생각을 좀 더 세밀하게 하게 되었고 글로 옮겨적고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뱉어내버리니, 나쁜 생각들이 조각모음 되어 삭제 키가 눌려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이 강같이 잔잔해졌다.
우둑커니 서재에서 날기다리는 친구들과 함께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나와 소통했다면 다른 이들과의 소통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동굴밖에선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적당한 스터디도 필요할 뿐 아니라,
마음이 닿기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미 나에게 온 집중과 에너지를 충분히 소비했으니 다른 이에게 에너지를 쓸 수 있었다. 혹여 그들과의 마남 속에서 상처가 되는 상황이 생긴다 한들
내 안의 내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상대들과의 불편한 대화와 어색한 상황들은 요란한 바람소리 정도는 느껴진다. 뿌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일 따윈 생기지 않는 것이다.
동굴 속에서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들은 마치 상대와의 불편함을 회피하고자 하는 일들은 결국엔 그들과의 원활하고 활발한 소통이 가능해지는 모순적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비워야 채워지고, 포기하면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고, 웅크려야 더 멀리 뛸 수 있지 않던가, 지금 상황이 어둡다면 밝아질 일밖에 없는 것이 라 생각하니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동굴밖에서 멀리 뛰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