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점 2
"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새로운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시장의 반응이 어떨지에 대해 가전사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디스플레이사의 프리쇼케이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호화로운 디너파티 한가운데에서 진행하는 쇼는 아니었고, 실무진들과 함께 시장반응을 조금 빨리 진단해볼 수 있는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우려되는 사항은 없는지 리스크 점검하는 워크숍이라고 보는 게 좀 더 맞을 것 같다.
가전사에서는 가전이 점차 집안에서 인테리어 적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가구 및 인테리어 시장의 분위기를 궁금해 했었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인테리어는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가전 경쟁사들이나 테크 트렌드에 민감한 엔지니어분들은 신기술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니즈를 확인하고자 열린 자리였다. 나의 역할은 인테리어 디자인이 매년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매년 달라지는 가구의 소재 베리에이션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자리였다.
담당 엔지니어 분들 외에 외부 인사로 소재전문가분들과 가구디자이너 그리고 트렌드 전문가들이 모여서 신제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그때 당시 TV뒤 패널을 유리로 접합하여 새로운 제품을 출시 예정이었다. 과연 TV와 유리의 조합이 어색하거나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이질 않을지, 혹여나 깨질 것 같은 불안한 요소로 생각 되진 않을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가던 중에 나는 속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TV에 유리소재의 조화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토론 중에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엔지니어 한분께서 앞으로의
"미래에는 TV가 없어질 것"
이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이 회사는 굉장히 소통이 잘되고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회사가 망해야 돼! " 라고 말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자유토론이 가능하구나 라며 흠칫 놀랐었다.
집안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TV. 지금은 많이 얇아졌지만 두툼하고 시커먼 흉뮬스러운 바보상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TV를 놓을 위치를 가장 먼저 정하는 가전이었고 TV가 위치를 잡으면 그것을 기준으로 소파의 위치가 정해지고, 자연스레 TV중심으로 구성원이 모아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구심점 역할은 옅어졌다. 90년대 초 벽걸이 TV가 등장하면서 TV의 두께는 얇아져 공간에 제약은 줄었지만 화면의 크기는 점점 커져 벽의 한 공간을 내어줘야 하는 인테리어 적인 요소로써의 역할도 커지게 되었다.
기능적인 측면 외에 심미적 요소가 추가되면서부터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얼마나 미학적으로 수려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단순한 고민이 아닌 소비자들이 TV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다가가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TV 없는 집들도 굉장히 많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콘텐츠 시청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TV의 입지는 명확해야 했다. 왜 TV가 이 집안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지 말이다.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있을 때 TV를 켜게 되는데 말 그대로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눈엣 가시가 되는 상황도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몇 해 전에 TV자체가 롤링되어 TV거치대에 숨겨져있다가, 화면을 보아야 할때 다시 스윽 나오는 제품이 출시되고, 가구장에 숨겨놓는 방식의 제품도 출시 됐다. 자꾸 숨기려 하는 이런 패턴들은 가전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을까?
최근 국민 인치로 떠오르고 있는 77인치형 모델에서 140형 까지 나오고 있으니 갈수록 큰 화면을 원하지만, 인테리어에 방해 되지 않음이 중요해진다. 결국 내가 원할 때만 내 눈앞에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가정용 빔프로젝터의 사용도 많아지는것도 같은 연결 선상으로 보여진다.
미래의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범죄를 예측하는 시스템이 등장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영화는 2002년 개봉작으로 20년도 넘었음에도 각 산업 별로 끊임없이 회자된다. 안경하나만 쓰면 원하는 화면이 보이고 혹은 손목 재스쳐 하나에 허공에 화면이 뜨곤 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미리 예측가능한 사건,사고을 시뮬레이션 하는 모습과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눈앞에 화면이 나타나는 기술 등은 20년 전에는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였지만 현실에서는 상용화 되고있는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모든 가설은 상상력이 기반이 된다는 사실과 그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식이 깊이 또한 깊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거실의 터줏대감으로 웅크리고 있는 TV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물리적인 형태의 사라짐인것이다. TV는 원하는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
새롭게 재탄생 될 것으로 보인다.
대담하다. 담대하다. 존재감 있다 등의 단어들로 기업 혹은 도시에 마스터 피스 역할을 하는오브제는 항상
크고 웅장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두바이의 브루스 할리파가 그랬고 도시의 상징물들을 하나씩 꼭 만들어 도시나 브랜드를 상상했을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상징물이 꼭 필요하고 그런것들이
하지만 이제는 눈에 띄는 외형이 아닌 소프트 파워가 더욱 강력하게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는 일이 많아 지고있다.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캠페인이나 그들의 선행들이 회자되면서 그 브랜드를 떠올렷을때 착한기업으로 각인되고 재구매와 긍정적인 요인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외국인을 만나면 불고기 김치를 아느냐고 묻는 것 보다는 BTS노래와 오징어게임을 듣고 본적있냐고 묻는것이 우리나라에 대해 그림을 더 빠르게 그리고 상징화 되고 있는것이다.
소비자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순간들에 대한 디자인이 이어지고 있다. 크기로 압도하는 하드웨어는 즉시성이 있다. 한번 보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들 명확하고 딱 떨어지는 확실성이 있다.
반면에 소프트웨어는 여운이 길다. 저런 컨텐츠는 어떻게 나온 건지, 어디서 영감을 받은건지,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거기에 담긴 가치 또한 곱씹어 생각하게 한다.
TV 또한 그렇다. 소비자들의 태도에 따른 다양한 시도와 소프트웨어의 성장은 소비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점점 커지는데 내가 필요 없을 때엔 보이지가 않는다? 마법 같은 일들이지만 예리하게 시장을 간파한 부분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소비자들이 필요할 때 직관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은 우리에게 긴 여운으로 우러러보게 된다.
마치 본인이 자신 없는 상황일 때 화장이 짙어지고 화려하게 꾸미게 되는 본능은 순간의 주목받기는 쉬우나, 일시적인 것처럼 상대보다 더 이목을 끌기 위해 더 과감하게 치장하는 모습은 결국 자존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상황이 되기도 한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이들은 자꾸 만나고 싶다. 처음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만나고 난 뒤 여운이 남는 것이다.
그들을 관찰하고 유추하고 공감해야 한다. 소비자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긴 제품들은 소비자들 또한 제품을 사용하고 바이럴 하는 횟수가 높아진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참 어렵고 불편하다. 기존의 모델을 바꿔야 하는 혁신들 앞에서 수많은 이들을 설득해야 하고, 때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따를 것이고, 자신감 있게 설득하기 위해서 나의 확신이 가득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수없이 연구하고 조사했야 한다.
소비자들이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하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은 다양한 불편한 관점에서 끈임 없는 시도를 통해 탄생된다. 그런 제품들을 구매하는 이들은 그 브랜드의 애호가가 되는 것이다.
과시적으로 보여지던 크면 클수록 좋았던 아이템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그제품은 어떻게 발전하고있는가!
상황에 따라 전혀 달리 적용되고 업그레이드 되는 것들은 또 뭐가있을까?
한손에 들어오는 스마트 폰 또한 TV 를 대신하는 역할이 늘어나면서 핸드폰 액정이 커지고 심지어 반으로까지 접혀서 들고다니는 제품을 보게된다. 당연하지 않은 무수한것들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의견들을 수렴할수있는 능력이 있어야 개인 혹은 기업의 존재감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게된다. 그렇다면 나의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고 있을까, 혹시 남들에게 보여지는 외형에 너무 많이 집착하고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