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점 1
자기야, 자기 오늘 입은 원피스 출산휴가 후 첫 복귀날 입은 원피스 맞지?
와 10년 전 옷이 아직도 맞는 거야?
회사 선배가 점심시간에 내게 한 말들이다. 나에 대한 높은 관심과, 시의성에 맞는 적절한 칭찬까지 나무랄 데 없는 멘트들이지만 사실 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호칭이 가장 싫었다.
평소엔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흠을 잡아채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가 내게 그런 호칭을 붙인다는 게 너무나도 괴기스러웠다. 타자 소리의 데시벨 컴플레인과 뒤통수에 꽂히는 생각 없고 둔탁한 시선으로 흠짓 두들기던 그녀가, 꼭 사람들 많은데서는 잘해주는 것처럼 자기라는 호칭을 쓰는지. 그렇게 공적 시스템과 절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호칭 앞에서는 그렇게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지 숨 막히게 싫다. 업무 외에는 엮이고 싶은 게 나노만큼도 없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자기야"는 심장을 멎을 정도로 놀라운 충격이었다.
두 번째는 그녀의 관심이 10년 전부터 있어왔다는데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내가 10년간 갇혀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소름이 끼쳤다. 심지어 옷이 맞느냐며 물을 때에는 나를 위아래를 훑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내 몸평까지 한다고? 진짜 당장이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사회적인 위치와 상대에 대한 아주 작고 얄팍한 배려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한마디 던지고는 조용히 일어났다. 정중하되 웃음기를 싹 뺀 어조로 읊조리다 "선밴 날 참 좋아하나 봐요 내가 기억 못 하는 나를 기억해주고" 다행히 그 뒤 론 관련된 사적인 대화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배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의도가 어떻든 상대가 불쾌감을 느끼는 순간 그건 폭력성을 띤다.
세 번째는 외모 지적은 좀 불편하다. 심지어 친밀도가 없는 이들에겐 말이다.
누군가에 대한 관심을 상대에게 드러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구별하는 것 또한 배려의 한 카테고리라 여겨진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만한 화제 제한하고 상대가 이 이야기들을 받아줄 대상인가에 대한 충분한 숙지가 된 다음 진행해야 한다. 선을 넘는 순간 그 관계는 뒤엉켜진다.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 제작할 때엔 뜻하지 않게 타깃 고객의 뒤를 캐는 일이 많아진다. 선배가 내게 했던 것처럼 정밀하게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선배와 기획자와의 다른 점은 상대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느냐 모르고 있느냐라는 것과 직설적인 화법 네가 우회적인 화법 인가에 대한 문제로 볼 수 있겠다.
훌륭한 다이어트 제품 기획자라면 "이 제품은 금방 살이 빠져요"라는 직설적인 말보다는 여러 관찰들로 인해 보이는 "당신의 건강 에너지는 당신의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해요"라고 접근하며 소비자들의 원하는 그들의 이미지를 제품과 브랜드에 녹이는 게 중요하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의미 전달은 명확할 지모르나, 상대에게 감동을 주거나, 제품 구매까지 이어질만한 강력한 동기는 사라진다.
실제 소비자 분석에서 빅데이터를 통해서는 시기별 소비자들의 관심사의 전체적인 추이와 특정 아이템 및 장소들의 뜨고 지는 것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키워드였던 빅데이터의 활용은 이제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되면서 이를 통한 소비자의 니즈 파악은 더 이상 차별화될 수 없게 되면서 개개인의 취향, 선호도, 성향 등의 개별 데이터를 고도화하는 기술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빅데이터의 반대말인 스몰데이터로 불리는데, 한마디로 타깃 소비자들의 행적을 살피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루틴은 무엇인지 주로 가는 장소는 어디인지, 자주 먹는 메뉴와 즐기는 운동 및 브랜드까지 살펴본다. 말 그대로 그들의 행적을 쫓는 것이다.
관찰을 통해 찾아낸 독특한 감성적 성찰은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관찰하고 고민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몇 해전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해 스몰데이터 분석을 한 적이 있다.
인테리어 소품이 예사롭지 않은 인플루언서의 집을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방문했는데, 아파트에 거주하지만 짚 앞에 새로운 형태의 문패가 있었고
소품 하나하나의 퀄리티는 높았으나, 말 그대로 짝이 맞지 않거나 다양한 브랜드와 스타일이 혼재되어 화려함과 정돈되지 않음 그 사이 중간쯤의 집이었다.
이분은 버리는 걸 싫어하시는 성격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집을 돌아보던 중, 서재에서 아남전자 스피커를 발견했다. "자취할 때부터 쓰던 스피커를 어떻게 버려요" 라며 이야기하시는 호스트 분을 보며 옛 것의 소중함과 지나간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즐겨하시는구나라고 생각으로 진화되었다. 빈티지한 제품들을 좋아해서 모은고 버리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추억들을 집에 나열하다 보니 빈티지 스타일링이 가능해진 것이다.
눈에 띄는 관찰 물들을 기억 해놓고 자연스럽게 물어가다 보니,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관찰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는 것.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고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소중함 경험들을 어떻게 큐레이션 하여 인테리어적 요소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질 때, 감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빅데이터만으로는 통찰을 얻어낼 수 없다.
우리가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감성적 특징.
아름답다거나 친숙하다거나 경이롭다 등의 모습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스몰데이터는 꼭 필요하다
- 스몰데이터의 저자 이자 브랜딩 미래학자로 블리는 마틴 린드스트롬-
스몰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여러 번 읽고 분석법을 도입했던 마틴 린드스트롬의 스몰데이터"는 여러 가지 사례들로 스몰데이터의 힘을 강력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그중 프랑스의 맥도널드가 성공한 비결에 대한 데이터 분석사례가 있었다. 미식가들의 집단이라 여겨지던 프랑스인들에게 패스트푸드의 대표 브랜드인 맥도널드가 미국 외 매출 판매 1위라는 결과에 더 빠져들어 읽어 내려갔다.
프랑스 여성의 대부분은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맞벌이 부부들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했고, 바쁜 엄마들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조리가 가능하고 저장이 용이한 냉동식품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외식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전통 레스토랑은 대부분이 코스 요리로 몇 시간씩 식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는 전통적 식사 매너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이처럼 프랑스 가정집을 방문하여 그들의 일상과 냉장고 속 컨디션 그리고 그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가족들과 다 같이 식사하러 가더라도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부실하지 않은 메뉴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원한다는 니즈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맥도널드는 그들의 시그니쳐 컬러인 레드 앤 옐로 대신 그린 앤 옐로로 변경하여 외관을 꾸미고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현지 식자재를 공수하며 신선한 재료와 함께 건강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입지를 닦을 수 있었다.
관찰만을 통해 그들의 행동 그 너머의 니즈를 파악하긴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자주 쓰는 말들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가설로 세울 수는 있다. 그 가설들을 입증해가며 하나씩 지워가다 보면 그들의 숨은 니즈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단 고객 대응뿐만이 아니다. 관계에서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일들이다.
내게 자기만의 기준으로 적극적인 칭찬을 해준 선배는 나의 행동과 외모를 보고 그대로 쏟아냈지만,
좀 더 추리하고 가설을 세워 내 니즈를 읽었다면 이선배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그날 내게 이런 질문을 했으면 어땠을까?
00 과장은 주로 어떤 운동을 주로 해요? 나도 관리 좀 해보려고요
뭐 사실 내가 뭐라고 팀장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를 배려하 관찰을 통해며 말했으면 좋았겠다라며 쓰는 글이 아니다.
상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객이 내 브랜드를 사랑하게 하려면 적어도 관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그들의 숨은 니즈를 캐치해낸다면, 내 우군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면밀하게 자세히 관찰하는 것도 물론 힘들지만 그 너머를 살피기 위해 다양한 가설 설정을 하는 것은 사실 더 불편한 과정들이다. 한번 더생각해야 하고 한번 더고민하고 내가 아닌 그들이 되어야 하는 상황들, 고민의 흔적들은 나를 혹은 브랜드를 차별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