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작은 텃밭에 재미를 붙이시더니 어느샌가 닭을 들여 계란 생산자가 되셨다. 닭을 기른다니.. 닭을 기른다는 건, 고등학교 시절 언어과목에서 읽은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가 아니었던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시아버지의 텃밭도 신기했지만 닭을 길러 계란을 생산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계란이라곤 마트 냉장고에 진열된 차가운 갈색 계란만 있는 줄 알고 살아온 나에게 시아버지가 직접(?) 생산한 계란은 미지의 문물이었다.
"이쁜 며느리야, 닭들이 드디어 달걀을 낳았어. 하나하나 모아서 택배로 보내줄게!" 어린아이 같이 즐거움으로 가득 찬 시아버님의 상기된 말에, 나는 궁금했다. '마트에서 배송 오는 것처럼 계란이 택배로 오는 건가?'
기다림 끝에 택배가 도착하고 나는 얼른 상자를 뜯었다. 계란곽을 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계란색이 왜 이래?"
마트에서 보던 갈색이 아니었다. 청록색, 흰색, 연한 갈색에 크기도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마트에서 보던 한판에 고르게 있는 같은 색깔 같은 크기의 계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천하제일 자기 뽐내기 대회라도 하듯 모든 계란에는 개성이 있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그러하듯 닭의 품종, 크기, 자란 환경 등에 따라 계란도 각양각색인 것이 당연하다.
불현듯 마트에서 산 계란곽에 들어 있는 같은 색깔, 같은 크기의 계란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대단한 것을 깨우치기라도 한 듯 시아버지가 보내주신 계란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이 소중한 계란으로어떤 요리를 해먹을지고민했고, 결국 간장계란밥을 해 먹기로 했다. 계란 요리의 최고봉은 단순하면서도 맛있는 간장계란밥이 아닐까?
증조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오래된 약간장에 시어머니가 방앗간에서 짜서 주신 고소한 참기름 그리고 시아버님이 직접 생산해서 보내주신 계란까지.
간장계란밥 한 그릇에 부모님들의 사랑이 한가득 담겼다. 이보다 단순하고 맛있는 맛이 있을까?
계란을 톡 하고 터트리니 프라이팬 한가운데 노른자가 동그스름하게 자리를 잡았다. 살짝 익혀서 먹어보니 기분 탓인지 마트에서 산 계란보다 훨씬 고소하다. 이게 계란 생산자의 특권인가?
얼른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해서 뜨끈한 밥 위에 올리고 간장과 참기름을 한 스푼씩 두르니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간장계란밥을 참 많이 먹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들로 끼니를 채우게 되었다. 오랜만에 간장계란밥을 먹으며 어렸을 적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