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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Jul 31. 2022

난 산부인과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난임산부인과에 갔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시술도, 호르몬 주사도 아닌 기다림이라고 한다. 어느 토요일, 처음으로 난임산부인과에 간 나는 깜짝 놀랐다.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한다고 해서 일찌감치 7시 반에 도착했는데 이미 15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2시간의 기다림 끝에 10분 남짓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2시간 동안 핸드폰도 하고 졸기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했는데 시간이 굉장히 천천히 갔다. 너무도 지루한 시간을 경험한 나는 생각을 바꿨다.


 난임산부인과사람은 많았지만 굉장히 조용했고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왔다.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책 보고 글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어 보였다.

 

 이후부터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겉옷과 읽을거리, 마실거리를 챙겨 다. 산부인과에 도착하면 우선 접수를 하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음료수나 차를 마시면서 책을 훑어본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 핸드폰으로 브런치에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공간이어서 집중이 잘된다.


  그리고 가끔은 유튜브로 시사상식을 찾아보기도 하고 낮시간에는 벽에 기대어 잠깐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내 순서가 온다.



 주말에 남편과 같이 가는 날에는 앞에 대기자 수를 보고 잠깐 나가서 식사를 하고 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맛집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번 주말 산부인과 접수를 하고 근처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일본식 수프 카레집이라고 한다. 점심에는 오로지 수프 카레만 메인으로 판다는 말에 맛집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들어갔다.


 주문한 지 5분도 안되어 나온 수프 카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던 카레의 모습은 아니었다. 튀긴 야채와 큼지막한 닭다리가 하나 얹어져 있었고 카레라기 보단 아주 묽은 국 같아 보였다.



 한 숟갈 먹어보니 카레맛이 진하게 나는 푹 삶아진 야채 닭고기 수프 맛이었다. 남편도 나도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허겁지겁 먹었다. 매운맛은 고춧가루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고춧가루를 두어 스푼 넣으니 얼큰해서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범계역에 있는 파랑새야라는 일식집인데 입구부터 일본식 분위기가 물씬 난다. 집 주변 맛집을 찾아서 신이 났다. 다음에는 저녁에 가서 닭구이와 테바사키(닭날개 튀김)를 먹어보고 싶다.


 나는 산부인과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공간에서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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