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계획을 싫어했다. 학창 시절 계획하기 좋아하는 친구가 하루 계획, 일주일 계획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오늘 이건 못했어. 내일로 미뤄야 해. 오늘은 두 개나 못 했네 주말에 해야지."라고 얘기하면 도대체 왜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세워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궁금했다.(물론 이제 계획을 세워야 그중 몇이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구속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공부계획도 인생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 자유가 많아져 계획을 세워보고 싶어서 매년 초 다이어리를 샀다. 그렇게 산 다이어리는 항상 앞장만 빼곡하고 한 달 후면 어디에 가있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보니 나는 ESTP다. 구속받기 싫어하고 무계획에 즉흥적으로 일 벌이는 걸 좋아하고 마무리는 아쉽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무계획적인 나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데, 이번 휴직기간을 무계획으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언제 다시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올까?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휴직기간에 할 일을 계획해 보기로 했다.
우선 건강한 몸을 만들자. 그동안 운동에 소홀했다. 점심시간에 커피 한잔 들고 회사 주위를 산책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남들 다 좋다고 하지만 아직 해본 적 없는 필라테스를 시작해보려 한다. 필사적인 물장구로 매번 쥐가 나 진도를 나가지 못한 수영도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한다. 거기에 건강한 몸을 위해 요리를 집에서 해 먹어 보자. 휴직은 요리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다음으로 머릿속을 채워보자. 회사를 다니면서 아웃풋을 만들어내기 바빠 인풋이 거의 없었다. 인풋을 위해 시작한 대학원, 드디어 논문을 써야 할 시기가 왔으니 전공 공부를 해보자. 또 나는 그동안 공무원 특유의 청렴(?)의식으로 돈에 대해 너무 몰랐다. 자본주의 시대에 발맞춰 재테크 공부를 해보자. 그리고 유학 도전을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하자.
마지막으로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 지금까지 안 해본 것들을 해보자. 우선 브런치 작가가 되어보자. 초등학교 시절 내가 쓴 글로 상을 받으면서 글 쓰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까지도 주말엔 종종 글을 썼는데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뚝 끊겼다. 그 외에도 자기 브랜딩 하기, 강의하기, 요리 배우기 등 새로운 경험이라면 무조건 좋다.
무언가를 계획할 때는 설렘과 떨림이 있다. 여행을 갈 때도 어디를 갈지 계획할 때 가장 설레지 않는가. 휴직을 한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일상을 계획해보자. 너무 타이트하지 않게, 너무 지루하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