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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Jan 23. 2022

052 목사의 꿈을 이룬 아버지의 믿음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급 사람이 나를 야훼인 줄 알리라 하시매 모세와 아론이 야훼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출 7:5-7)


강봉수 박사님은 성공한 법관이었다.

출처:경향신문 2016년 10월 10일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28년간 판사로 재직했고, 퇴임 후에는 9년간 법무법인에서 고문 변호사로 일했다.


이처럼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가 66세에 돌연 사표를 내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물리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주변 지인들은


"우리 나이에 박사 학위 따려다가 암 걸리기 쉽다"


라고 말하며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서툰 영어 실력과 생소한 물리학 이론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고 결국 유학 7년 만인 73세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소감을 묻자


"미국에서는 졸업식을 'commencement(시작)'라고 부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고 아론은 모세보다 3살 더 많은 83세에 모세의 대언자 역할을 맡았다. 꿈과 사명을 이루는 데 나이가 문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과 사명이 있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지금' 도전하자. 지금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다.


<감사 QT 365> 중에서


신학공부 시작한 뒤 70대 중반의 아버지 모습.


우리 멋진 아부지.

72세에 신학공부를 시작해서 84세에 박사 수료(논문에 통과하지 못해서 수료)를 한 우리 아빠 목사님.

갈렙과 같은 믿음으로 작은 교단이지만 83세에 목사님 안수를 받은, 인간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준 아빠가 지금 매우 그립다.


아빠는 석사논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2017년 건강검진을 통해서 전립선암 말기, 골육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되셨다. PSA 수치가 5 이상이면 전립선암 초기라는데, 아빠는 수치가 666이었다. 이미 골반뼈를 시작으로 두개골까지 뼈암이 퍼져있었다. 팔다리가 잠을 못 잘 정도로 쑤신다며 온 몸에 파스를 붙이시고 베개를 바꿔달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암이 온몸에 퍼졌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며 냉정하게 말하는데,  그 말에 정말 하늘이 노랗더랬다.


울며불며 의학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전립선암으로 유명한 교수님을 연결해달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선배 작가가 하는 프로그램의 상담교수가 전립선으로 매우 유명한 분이셨고, 바로 연결이 되어 아빠는 즉시 그 교수님의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곧바로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수술이 이뤄졌고. PSA 수치는 1 밑으로 떨어지는 기적이 벌어졌다. 그 뒤 항암 12차례. 항암약 엑스탄디를 2년간 드시면서 가족과 함께 5년의 생명을 더 연장하신 생명연장의 축복을 이루신 것이다. (암이 아닌 심근경색으로 천국을 가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주변에서는 칠십이 넘은 노인이 뒤늦게 무슨 공부냐며,

노인정을 가던지 교회에서 하는 노인대학에서 취미활동을 하라고 했지만

아빠는 총신대 평생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함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목회선교대학원을, 목회학 박사과정까지 끝내신 것이다. 학생이 교수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 교수님들도 가르치는데 참 힘드셨겠다 싶다.


아빠는 공부하시면서 나에게 많이 도움을 요청하셨다.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한 번만 봐달라며 노트북을 들고 다짜고짜 찾아오시는 거다. 특히 석사논문을 낼 때는 논문 형식도 잘 모르셔서 나한테 자주 물어보셨다.


"아빠가 우리 집에서 가방끈이 제일 길잖아. 난 대학밖에 안 나와서 잘 모른다니까...!"

"맞춤법만 좀 봐줘.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바쁜데 미안하다"


열심히 글 써서 오신 아빠한테, 친절하지 못했던 내가 너무 후회스럽고 미안하다.

특히 박사논문의 주제를 두고 아빠는 매우 혼란스러워하셨고... 난 포기하라고 설득했다.

논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빠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학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빠의 고집은 절대 꺾이지 않았고, 난 아빠 눈앞에서 학교에 전화를 해서 논문은 내지 않을 테니 휴학하겠노라 말했다. 아빠의 실망 가득한 표정을 봤지만,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아빠의 학교 학장님의 부의금 봉투를 든 비서 목사님께서 찾아오셨다.


"아버지 목사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몇 주 전. 박사논문 초안을 들고 와서 교수님을 만나고 가셨어요. 모르셨어요? 다음 학기에 논문을 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하니 저희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학교 임직원과 학생들이 모두 아버님을 존경했습니다. 학장님께서 직접 못 오셔서 정말 미안하다고 따님에게 전해달라셨습니다. "


심장에 송곳이 박히는 줄 알았다.

정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아빠와 같이 공부하시고, 목사 안수도 같이 받으셨던 목사님께서 아빠의 공부에 대한 열의를 얘기해주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마지막까지 힘들게 박사논문을 써서 교수님께 제출을 했던 그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너무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 있다면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우리 아빠가 나에게 보여주신 증거이며. 믿음의 유산이다.


오늘 엄마에게 감사 큐티를 읽어드렸더니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딱 네 아빠네. 꿈을 이뤘잖니. 목사..."

"아빠가 엄마를 사모님이란 선물을 주고 가셨네?"

"네 아빠는 참 복 받은 사람이야. 부러워... 짧게 아프고 천국에 갔으니 얼마나 좋니"


엄마는 아빠의 공부를 많이 반대하셨지만. 꿈을 이룬 아빠가 속으론 많이 자랑스러웠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빨리 아빠가 자신을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엄마도 꿈이 있잖아. 일어나! 걸어라! 뛰어라!"

"아멘. 난 할 수 있다! 해보자!"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인 나를 위해.... 오늘도 힘을 내신다.

2022년...

벌써 1달이 빠르게 지났지만,

올 한 해 하나님 안에서 엄마와 나의 꿈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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