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팅달 Mar 10. 2022

090 편견 그리고 판단에 대해서

편견 그리고 판단에 대해서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밖에 서서(사도행전 10:5,17)


2014년에 개봉하여 한국에서만 천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끌어모았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있다.

출처: 나무 위키 <인터스텔라>

이 영화는 식량 부족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고자 우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의 흥미를 자아냈던 부분은 지구 밖 다른 행성에서의 시간이 지구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흐를 수 있다는 상대성이론에 입각한 장면들이었다. 똑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행성에서 1시간을 보내면 지구에서는 수년이 흘러버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는 사랑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시간도 다르게 흐르는데도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우주적 차원에서 사랑을 교감할 수 있음을 표현한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사랑의 높은 차원이 시공간을 뚫고 들어온 이야기는 사도행전에도 등장한다. 각기 시간을 정해 다른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던 이방인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는 하늘로부터 온 음성을 듣고 서로 만나을 갖게 된다. 이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과 성령의 선물을 주기 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기도하는 성도는 이처럼 시공간을 뛰어넘어 찾아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도 경험할 수 있다.


<감사 QT 365> 중에서



고넬료는 순수 로마인(이방민족)

베드로는 순수 유대인.

하나님이 이 둘을 만나게 하신 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한다.

 

오순절 성령 사건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환상을 통해 유대인 말고 또 다른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당시 사도들은 능력도 부족하지, 전해야 할 동기도 미흡하지,

또 선민사상의 편견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복음 전도가 잘 되지 않았다.

특히 유대인의 대표인 베드로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된 로마 군인 고넬료와 베드로를 만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시작하시게 된다. 이게 사도행전 10장 말씀이다.




난 가끔 '아니 왜... 저 사람이 뭘 잘했다고 응답을 받는 거지?' 의아할 때가 있다.

인간성도 정말 별로고, 욕심쟁이에,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혐오스러운 타입의 사람이 있다.

그런데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 거라.

그가 원하는 대로, 눈에 띄게...

아니 왜??? 저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를 향한 계획은 뭔데?


상한 마음으로 오늘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인정해야 할  말씀이 있었다.  

바로 "편견"이라는 거다.

우리에게 편견이라는 게 한 번 들어오면, 뼛속까지 새겨진다고 한다.

가진 자, 배운 자, 어느 지역 출신, 또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한 편견 말이다.

예수님은 가장 배우지 못하고, 가장 무식하고, 가장 돈이 없는 자를 불러내서 제자를 삼는 것으로

그 편견을 깨셨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패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7-29)


편견이 있으면 은혜가 떨어진다.

은혜로운 말씀을 들어도 편견 때문에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밉고, 용서하지 못하고, 그 사람만 보면 기분 나쁘고, 억울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불쌍하게 보인다는 거다.

음....

용서의 마음이 생기고, 긍휼의 마음이 생기고,

오히려 그 사람이 잘 살게 해달라고 축복하게 되는 변화가 생긴다는데...

음....

과연 언제쯤이나, 내가 할 수 있을까?




사람을 판단한다

거기엔 전제가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전제 말이다.

나는 좋은 사람인데.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거.

나도 욕심이 많은데.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욕심 많은 욕심쟁이라는 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어주셨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은 거다.

그 사람이 밉고 싫지만, 하나님 보기에는 그도 나처럼....

사랑의 대상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판단은 내가 하니까.

너는 판단하지 말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089 작은 자에게 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