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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Sep 23. 2022

190 30년 뒤에 딸에게 보내는 편지

30년 뒤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아가 1:6-8)


몇 년 전에 백화점 명품 매장 직원들이 손님들을 옷차림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대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먼저 허름한 복장의 손님이 매장을 방문했다. 이 손님은 보풀이 일어나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었는데. 한눈에 봐도 볼품이 없었다. 이러한 복장으로 손님이 명품 매장에 들어섰을 때 어느 직원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한편 같은 손님이 단정한 복장을 하고 같은 매장을 찾았을 때 직원들은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고 친절하게 상품 설명도 해주었다. 다른 백화점에서 실험을 했을 때도 결과는 똑같았다.


이처럼 사람은 겉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구약의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1장 5절에서 신부는 자신이 햇볕이 내리쬐는 포도원에서 일해 피부색이 검다고 고백한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눈에 그다지 매력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랑이 보기에 신부는 여인 중에 어여쁜 자요.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아가서의 신랑은 예수님을, 신부는 주님을 믿는 우리를 나타낸다. 주님은 겉모습에 따라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어떠하든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감사QT365>중에서



딸이 30년 뒤, 자신에게 보낼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50살이 되었을 딸에게, 아직 50살도 되어 보지 않은 내가 편지를 쓴다?

좀 어려웠다.


딸의 학교에는 큰 전통이 있는데, 졸업하고 30년 뒤에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는 동창회를 한단다.

생각해보니까 7월에 딸의 기숙사 짐 때문에 학교에 데리러 갔다가, 나이 든 분들이 동창회 기수별로 모여서 담화를 나누는 것을 본 것 같다. 역시. 100년 넘은 학교는 스케일이 다르구먼...


30년 뒤에 열어볼 타임캡슐에 지금의 가족들이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편지를 써달라는 건데... 누구는 엄마가 손글씨로 예쁘게 감동적인 글을 써주어서 부러웠다느니. 누구 엄마는 재밌는 농담과 비전을 써주셔서 다 같이 읽고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둥

엄마는 작가니까 친구들의 기대가 아주 크다면서 나를 압박해왔다.


뭐 편지는 진심이니까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내 의견을 쓰는 게 제일이다 싶어서.


"믿음의 가문이 되었으면 좋겠으니, 믿음이 너보다 더 좋은 사위가 존재했으면 좋겠구나~ 키는 180이 넘었으면 좋겠고, 말 잘하고 잘생겼으면 좋겠고, 아빠처럼 유머가 있으면 더 좋겠으며, 딸만큼 사위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10대 청소년일 손자손녀는 교회에서 자라서 이쁘고 잘생기고 말잘 듣고 외할머니를 아주 많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딸이 읽다가 흘겨보더니 다시 써달라고 했다.

내가 너무 외모지상주의라나? 진지하게 써달라고 하는데...

진짜로 나는 잘생긴 걸 좋아한다고, 이것이 나의 진심이라고 말해줬다.

아직 50살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어떻게 50살이 된 너를  상상하냐고 했더니,

감동적인 문장을 좀 넣어주면 안되냐고 했다. A4한장을 꽉 채워서 써줬다. 그리고 그 중에...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녀로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가치 있고 존귀한 자가 되길 바란다."


라고 적었더니. 맘에 들었는지 자기 방에 들어가다가 뜬금없이 지금 엄마는 그렇게 살고 있냐고 물었다.


"분명한 건, 외할머니한테 만큼은 (울컥)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사람이지. 너도 나에게 그렇게 되어 줄 수 있지?"

"왜 울어? 그냥 물어본건데?"


만감이 교차하는 이 눈물이 왜 마르지 않는지...

난 괜히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




내가 딸을 키우면서, 엄마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아픈 엄마가 나에게 매번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늘 마음에 박혀서, 아린다.  


최선을 다해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고 싶은데...

나도 지쳐가는지... 어떤 때는 전화하는 것을 깜빡하기도 한다.

어제 기도원에 다녀와서 엄마에게 전화해야 할 시간을 넘겨버렸다.

망설이다가 주무실 것 같아서 전화를 안 했는데 엄마는 한참 기다렸다고 했다.

영상통화로라도 딸 얼굴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어쩌면 하나님도 엄마의 마음일지 모른다.

구원자 되신 예수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난 매번 기다리시라고 한다. 또 참아달라고 한다.


하지만 딸이 나에게 하듯이. 내가 엄마에게 하듯이

하나님께도 그렇게 사랑스럽게 최선을 다해 행동한다면,

하나님이 많이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50살이 된 나를 상상했다.

딸에게 편지를 써줬듯이 나도 지금보다는

더 성숙하고, 잘 웃으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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