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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Jan 03. 2022

032 은총의 돌층계. 섭리의 자갈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출처: 다음 블로거(phb3075)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기독교 문인인 김남조 시인의 <설 일>이라는 시 중 세 번째 연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삶을 긍정하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감 느끼게 된다. 


지금 나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을 오르고 있다. 


그 돌층계를 오르다 보면 무릎이 아파 주저앉는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는 어느 다른 곳이 아닌 은총의 돌층계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며 살기가 힘들고 그 길에 좌절이 있을 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사랑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자갈밭'위에 있지. 


절대로 어느 무의미하고 열매 없는 길 위에 있지 않은 것이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 있는 우리의 삶.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릴 것 밖에 없다.


<감사로 시작하는 365> 중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성령 충만과 방언에 대해 강조를 하는 곳이다.

방언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은 특별집회가 열리면 그때 집중 기도를 통해 많이 받는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과거 초교파적으로 방언 학교가 인기가 많아서 그곳을 통해서도 방언받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 방언이 신실함을 구분 짓는 잣대인가? 그렇지 않다. 또 방언을 한다고 해서 믿음 생활을 잘하는 걸까?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은혜로 얻은 선물이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는 은사 중에 하나이니까.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성령체험에 대해 얘기를 했다.

난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받았고, 엄마는 나보다 3년 뒤에 방언을 받으셨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한 때 방언을 해야만 신실한 성도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신앙 간증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방언을 했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사람만 받는 거라 교만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내 생각이 많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목사님이 되신 아빠는 소천하실 때까지 방언을 못하셨고, 믿음이 좋은 남편 역시 방언을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인가? 노노노 노노노. 

즉, 방언은 은혜로 받은 선물일 뿐이지 믿음의 크기를 쟤는 척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그 소중했던 경험들이 간증으로 쌓이는 것 같다. 


믿음 생활은 교회만 다니는 성도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되어가는 "성화"과정이라고 배웠다. 

나만을 위한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 

방언을 받았다면 타인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더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듯이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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