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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Jan 04. 2022

033 용서하는 삶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4-45)


1979년 생후 22개월 된 조엘 소넨버그가 타고 있던 자동차를 

트럭이 덮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출처: 서울신문

사고로 불구덩이가 된 차 안에서 어린 조엘의 두 귀와 왼쪽 손, 오른손의 손가락들. 머리를 감싸던 피부와 살이 타서 없어졌다. 그러나 조엘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45번에 걸친 수술을 견뎌냈다. 조엘은 겨우 목숨만 건진 채 마음에 절망과 열등감과 미움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지 않았다. 조엘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넓은 가슴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는 뛰어난 학생이 되었고 축구. 농구. 자전거. 사격 선수로 활약했다. 사고를 내고 도주했던 트럭 운전사가 20여 년 만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조엘은 재판정에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를 용서해 주었다.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저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에 감싸여 살아갈 겁니다. 저 가해자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제 외모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세상도 기쁨으로 용서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도전을 우리에게 주신다. 오늘 우리가 용기를 내서 이 말씀을 실천하면 우리의 삶에는 이전에는 몰랐던 기쁨과 감사의 이유가 생겨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용서는 삶을 바꾸는 힘이다.


<감사 QT 365> 중에서



이모와 함께 병원에 계신 엄마를 면회하고 오면서, 이모가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이건 엄마와 이모의 "막내 고모" 이야기다. (역사의 한 장면이다) 

6.25 때는 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도 

잘 알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죽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하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엄마의 고향은 전남 곡성군 학정리. 전주 최 씨 일가가 모여 사는 곳이다. 

엄마의 할아버지(나의 외증조부)는 참판. 한마디로 학정리의 유지셨다.

엄마에겐 두 명의 고모가 계셨는데, 

막내 고모가 (6.25쯤) 남편이 순천서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증조할아버지는 막내딸이 시집을 잘 갔으니 동네잔치도 열고 매우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6.25가 터지고. 북한군이 내려오면서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북한군이 제일 먼저 공격한 곳은 바로 경찰서! 

엄마의 막내 고모는 피신할 시간도 없이 그 지역의 소작농들로부터 몸이 일곱 토막으로 잘려 숨지셨다고 했다.

경찰서장인 남편이 어디로 숨었느냐는 추궁이 있었을 것이고, 말을 안 하자 북한군에 의해 조종을 당한 동네 사람들이 살해를 했다는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여기저기 풀 숲에 던져진 막내딸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오열을 하셨단다. 

분한 마음에 범인을 찾아 나섰지만, 지금처럼 CCTV가 있던 시절이 아니니 범인은 확정할 수가 없었다고... 

다만 정황상 증거로 지목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휴전 후엔 유명한 신문사 기자가 되었고 정치판에도 기웃거린 인물이 되었단다. 

분명 인민군 편이었는데 어느 날 신분을 싹 바꿔서 나라 일을 하겠다며 국회의원 선거에도 나왔더란다.


난 그 얘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나서... 대체 누구예요? 

이모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서 말해도 모른다고 했다. 


"분하지. 그렇다고 용서를 안 하면 어쩌겠니? 자기가 범인인 증거가 있냐며 달려드는데 그게 더 무섭더라. 전쟁이란 건 그렇게 두려운 거란다. 전쟁 앞에서 용서는 사치지."


증조할아버지는 딸의 죽음에 용서할 대상도,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그 이후 화병을 얻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과거에도 엄마에게 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또다시 이모의 들으니까 더 생생해졌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무슨 소설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드는구먼.


엄마와 이모가 태어난 시대는 일제강점기와 구한말의 봉건 의식이 남았던 때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이승만이 토지정책을 바꾸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토대가 세워졌고

그 이후 개발도상국으로 급부상하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풍요로움 속에서 자라는 내 딸. 

이렇게 모녀 삼대의 셋이 모이면 세대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각자가 생각하는 용서의 개념도 많이 다를 수밖에...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용서'는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영화 밀양의 원작)>에 나오는 인간상이었다.   

살인자인데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으니 더 이상 인간에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벌레 같은 생각. 

소름이 돋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최소한 그런 몰상식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과오를 상대방이 납득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줄 때까지 

무릎을 꿇어 사죄하는 것이 사과와 용서의 본질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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