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습관 만들기

day-10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은 없는 미스테리

by 나무늘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옷장을 뒤집는 시기가 있다. 봄과 가을.

여름엔 무난 한 반팔티면 여름을 날 수 있다. 겨울도 겉에 입는 외투가 주를 이루므로 외투만 돌려 입으면 그만이다. 봄과 가을이 애매한 계절이다. 특히나 이전과는 다르게 봄과 가을이 짧아졌기에 옷을 구매할 때도 더 고민하게 된다. 어차피 조금만 더워지면 안 입게 될걸, 조금만 추워지면 안 입게 될걸.

그러다 보니 봄과 가을에 입는 얇은 외투류들은 잘 사지 않게 되고, 결국은 그 시기가 되면 또 고민하게 된다.

옷장과 서랍, 헹거에는 옷들이 토하듯 넘치며 아우성을 치는데, 막상 입으려고 하면 입을 옷이 없다.

이건 불변의 진리다. 왜 없을까. 누가 숨긴 것도 아니고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작 입을 옷을 구매해 놓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싸다는 이유로 한 철만 입고 버리게 되는 옷들을 사모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몇 년 사이에 불어난 몸무게가 돌아갈 일이 없는데 옷은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두어서일까.

무튼 이 고민은 계절이 돌고 돌아와도 계속되었다.

옷을 정리해서 버려야 하는 옷들은 과감하게 버리려야 입을 옷이 눈에 보일 텐데. 입기에도 애매한, 버리기에도 애매한 옷을 언젠가 입겠지 라는 생각으로 모셔두니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답은 알고 있지만, 잘 버리지도 못하는 이것도 병이리라.

이러니 옷을 사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많은 옷들에 양심상 옷을 사는 것을 미뤄두고야 만다. 입을 옷이 없단 타령만 하는 채로.


어디선가 옷에는 추억이 깃든다고 읽었던 것 같다. 어떤 옷은 어느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추억이 있고, 어떤 옷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의 추억이 있고, 어떤 옷은 즐거웠던 추억이, 어떤 옷은 슬펐던 추억이 그렇게 깃들어 있다. 그날의 사진이 그것을 증명하듯.

내년에 똑같은 고민을 또 하기는 싫으니 이제는 안 입는 옷들을 보내줘야 할 것만 같다.

다시 새 옷으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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